본문 바로가기
쓰다/수상2(隨想二)

D-2/냉전

by K기자 2013. 3. 25.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58


D - 2
[1584호] 2008년 04월 06일 (일) 16:18:36고대신문kunews@kunews.ac.kr
“이런 XX" 총선 출마자 섭외를 하던 동료가 전화를 끊더니 벌레 씹은 표정으로 상소리를 내뱉는다. 평소에 무척 공손하고 점잖은 사람인지라 한참을 쳐다봤다. 왜 그러냐 했더니 총선 TV 토론회 참여 문제 때문에 소위 당선이 유력한 후보측 보좌관과 -실은 아직 당선이 안됐으니 보좌관도 아니고 비서쯤이나 되겠지만- 전화를 했는데 그렇게 고압적일 수가 없더란다. 섭외를 부탁하는 동료에게 “주제는 뭔대?” “그거 꼭 해야하는 거냐?”며 반말투로 말을 함부로 했던 모양이다. 마치 국회의원에 당선이라도 된 듯 마냥 하대하는 이른바 유력후보라는 쪽 사람들이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다 했다. 

측근들이 전화통화만 예의 없게 하는 정도라면 그나마 양반이겠다고 동료를 위로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더 오만하고 괘씸한 후보들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TV 토론회를 거부하는 후보들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인 지난주 영호남에서는 TV 토론회 파행이 잇따랐다. 부산시선관위에 따르면 부산지역 18개 선거구 가운데 10개 선거구에서 TV 토론회가 파행으로 진행됐다. 초청후보가 두 명인 곳에서 한 명이 불참을 통보해 나홀로 토론회가 됐는가 하면 토론자체가 무산된 곳도 상당수다. 토론회를 거부한 쪽은 대부분 여론조사에 상대 후보를 큰 폭으로 따돌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유력후보들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호남에서도 TV토론회 파행이 벌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거기서는 민주당 공천자들이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다른 후보 지원유세가 사전에 약속돼 있었다느니 꼭 참여해야할 중앙당 행사가 있다느니 후보들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토론회 불참에 대한 혐의는 한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게임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골치 아프게 토론회를 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이른바 유력 후보들에게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시달리다 보면 표만 깎일 뿐 득표에 전혀 도움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속셈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이 전략을 써서 꽤 쏠쏠한 재미를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선거 비용을 줄이고 불법, 탈법을 줄이자며 대규모 정치유세를 없애고 도입한 TV토론회건만 불과 4년 만에 하나마나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차라리 예전처럼 대규모 유세를 부활시켜야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민단체들과 언론운동단체들이 유권자를 우롱하지 말라고 비난하고 나서도 소위 이 유력후보들에게는 그저 쇠귀에 경 읽기다.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인데 역시 문제는 이들의 오만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을 만들어준 지역 유권자들의 일방적으로 몰아주기식의 투표행태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4년 전에도 이런 식의 불참이 문제가 돼 TV토론회 불참 후보들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입법과정에서 물거품이 됐다. 역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죽어도 안하는 현역 우리 의원님들 작품이다. 이들에게 맡겨서는 백년이 걸려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다. 못된 의원들의 오만은 역시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이제 이틀 남았다. 

 <原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