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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사진/작문

by K기자 2013. 3. 25.

사진/작문

불과 20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우리나라 가정의 보물순위 1위를 차지했던 품목이었다. 그러던 중 나온 자동카메라는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시장을 석권했고 마침내는 카메라 대중화의 시대를 열었다. 최근 등장한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에 장착된 카메라는 필름의 현상, 인화 과정까지 생략해 카메라 대중화의 폭을 더욱 넓혀 놓았다. 아날로그 카메라 시절 유행하던 사진 공모전의 자리에 폰카(핸드폰 카메라), 디카(디지털 카메라) 사진 공모전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바햐흐로 카메라 대중시대, 이미지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사진(寫眞)은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사실(眞)을 묘사하는(寫), 그럼으로써 진실을 담은 수단으로 인식돼왔다. 20세기 초반에 촬영된 우리 조상들의 생활모습 사진에서 그동안 문서상으로나마 추상적으로 짐작했던 그 분들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진에 대한 우리의 이같은 태도는 법정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교통사고 뺑소니 차량번호가 찍힌 사진은 뺑소니 운전자의 범법행위를 입증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서 채택되는 것이 그 예다. 이 모두가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진이 현실의 거짓없는 반영이라는 믿음 못지않게 끈질긴 주장은 그것이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진이라는 것이 셀 수 없는 시점(視點)과 각도에서 이뤄지는 촬영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사진의 주관성을 말하는 이같은 견해도 한편 타당하다. 지난 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 때 전경을 쇠파이프로 내려치는 시위학생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국의 주요 일간지를 장식한 때가 있었다. 그 이미지는 당시 학생에게 불리한 여론을 타고 학생들의 과격성, 폭력성을 비판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하지만 막상 그 사진은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찍혀진 것일 뿐, 폭력행위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추후에 밝혀져 사진의 객관성에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사진(寫眞)이냐 사허(寫虛)냐의 논쟁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점입가경의 양상을 띤다. 시점과 각도의 변화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카메라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촬영결과물을 직접 조작해 내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훼손된 옛 사진을 복원하기도 하고 증명사진에 있는 여드름이나 잡티 등을 없애기도 하는 등이 그 예다. 디지털 카메라와 컴퓨터를 이용한 편집기술은 원래도 모호하기 짝이 없던 사진과 카메라의 정체성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진을 예술로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사진의 객관성 논란과 더불어 예술계의 오랜 논란 중 하나다. 사진가들의 오랜 노력 끝에 오늘날 사진은 예술로서 대접을 받아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디지털 카메라 등을 만들어 내 사진과 카메라의 보편화, 대중화를 이루어 낸 지금, 사진은 그 객관성을 의심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지위 역시 다시금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단순한 기술의 소산이므로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다른 예술계의 주장을 극복하기 위한 사진가들의 투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어려워질 듯 하다.

原 2003년 7월 8일 작성 155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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