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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라인업'/냉전

by K기자 2013. 3. 25.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79


'라인업'
[1580호] 2008년 03월 09일 (일) 17:11:10고대신문kunews@kunews.ac.kr

기자실에 있다 흥미로운 광경을 보게 됐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한 후보를 민다는 '현직'지방의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자회견은 보통 지지후보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엔 그 반대였다. 경쟁자라 할 수 있는 현역 국회의원이 싫다는 것이었다. 

현역의원 때문에 되는 일이 없었다는 이들에게 현역의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짚어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현역 국회의원과) 우리는 다 아는 사람들인데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는 어이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이들의 표정에서 의당 있어야 할 어떤 결의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느껴지는 거라곤 모시는 주군에게 얼굴도장을 찍어놨다는 만족감 정도? 

하지만 정작 재미있는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현역 국회의원을 지지한다는 ‘전직’ 지방의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또 다른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이들은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사람들이 유력 정치인을 위한 해바라기쇼를 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당신들도 해바라기하는 것 아니냐 했더니 답을 하지 못한다. 지지하는 후보의 잘한 일을 추려달라 했지만 역시 말을 하지 못한다. 상대측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에 급조한 기자회견임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속된 말로 '니네들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쏘냐’는 식의 라인업 기자회견이요, 기싸움이었던 것이다. 

지방의원들의 이같은 줄서기 행태를 보고 있자니 다시금 이명박 정부의 인사 라인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스스로 후보시절부터 나는 학연, 지연에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줄기차게 했지만 지금 드러난 진용의 면면은 고소영 라인이니 강부자 라인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지방의원들은 기싸움이라도 한다지만 대통령의 이런 식의 줄세우기 인사는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덕분일까?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출근을 한다고 하고 경찰들 역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안사범을 앞다퉈 잡아들이면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내놓고 있다고 한다

슬픈 것은 요즘 따라 부쩍 주위에서 내게 대통령과 같은 대학을 나와서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학부시절 우리 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취임 2주일이 지난 요즘은 대통령과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주위에서 알아봐주는 것이 매우 불편해졌다. 한때나마 내심 뭔가를 기대했던 내가 저 기자회견 여는 지방의원들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이 제발 내가 성급해서 그런 것이길 바랄 뿐이다.


<고대신문 칼럼 '냉전'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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