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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2

33년 전 오늘 10편 "도청 진압 D-1" 10. 33년 전 오늘 10편, "도청 진압 D-1" http://zxy.kr/07d (앵커)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해있던 33년 전 오늘 이 시각, 도청엔 죽음을 뛰어넘은 숙연함과 광주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가득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아까운 목숨 살려보겠다고 광주의 어른들이 탱크 앞에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시민들은 매일 궐기대회를 열어 광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불안감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문이 돌았고 도청 앞 광장의 술렁임도 커져만 갔습니다. 도청에서 계엄군을 몰아낸 지 엿새째인 새벽 5시.(1980.5.26.월요일, 맑음. 낮최고기온 19.1도) 화정동에 계엄군의 탱크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접수돼 도청이 발칵 뒤집혔습니.. 2013. 6. 18.
33년 전 오늘 3편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3. 33년 전 오늘3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http://zxy.kr/076 (앵커) 광주MBC 5.18 연속 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오늘은 비극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과 대검에 당시 금남로는 피로 얼룩졌고 시민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한 시민이 쓰러져 있습니다. (1980.5.19.월요일, 밤부터 비(5.6mm), 낮최고기온 22도) 머리가 피투성이인 이 남자,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는 표정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겁니다. (인터뷰)최병귀/ 5.18 유공자(화면 속 피 흘리는 당사자) "저도 이해가 안가요. 그게. 우리가 나쁜 짓을 하고 그랬다.. 201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