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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3

33년 전 오늘 11편 "죽음으로 광주를 지키다" 11. 33년 전 오늘 11편 "죽음으로 광주를 지키다" http://zxy.kr/07e (앵커) 33년 전 오늘은 계엄군에 의해 도청에 있던 시민군이 진압된 날입니다.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광주시민들의 희생은 33년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부활했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새벽 3시. 도청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여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광주 시내를 울리고 있습니다.(1980.5.27.화요일 맑음. 아침최저 8도, 낮최고 22도) (인터뷰)박영순/27일 새벽 마지막 방송 담당 "광주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최후까지 도청에 남은 2백명의 시민군들은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외무담당 부위원.. 2013. 6. 18.
33년 전 오늘 8편 "지휘체계 이원화 의혹" 8. 33년 전 오늘 8편 "지휘체계 이원화 의혹" http://zxy.kr/07b (앵커) 5.18의 여러 풀리지 않는 의혹 중에 계엄군끼리의 오인사격처럼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여덟번째 순서, 오늘은 실제로 계엄군을 움직인 세력의 실체룰 알아보겠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5.18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군인들이 숨진 날입니다.(1980.5.24.토요일. 오후늦게 비(12.6mm). 낮최고기온 26.8도) 송암동에서 11공수 10명,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3명 등 이날 하루만 13명의 군인들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시민군과의 총격전이 아닌 계엄군 내 다른 부대 군인들과의 오인사격 과정에서였습니다. 같은 지휘 라인에 있는 군인들.. 2013. 6. 18.
33년 전 오늘 3편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3. 33년 전 오늘3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http://zxy.kr/076 (앵커) 광주MBC 5.18 연속 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오늘은 비극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과 대검에 당시 금남로는 피로 얼룩졌고 시민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한 시민이 쓰러져 있습니다. (1980.5.19.월요일, 밤부터 비(5.6mm), 낮최고기온 22도) 머리가 피투성이인 이 남자,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는 표정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겁니다. (인터뷰)최병귀/ 5.18 유공자(화면 속 피 흘리는 당사자) "저도 이해가 안가요. 그게. 우리가 나쁜 짓을 하고 그랬다.. 201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