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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지적재산권/작문

by K기자 2013. 3. 25.

지적재산권/작문

007 등 첩보영화를 보다 보면 지령을 주고 받는 장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지령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령을 일단 한 번 보면 지령이 삭제됨은 물론이고 그것을 담은 기기는 자동으로 폭파되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스파이는 지령이 자동으로 삭제 혹은 폭파되기 전에 재빨리 그것을 이해하고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영화 속 장면'이 우리 주위에서 곧 실현될 전망이다. 월트 디즈니는 포장을 뜯으면 산화작용이 시작돼 48시간이 지나면 사용할 수 없는 DVD를 이번 달 중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복제를 막고, 창작자의 창작의지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늘고 이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 역시 확대되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소리바다'가 폐쇄 명령을 받고 '벅스뮤직'이 시설물 가압류 처분을 받음으로써 일단 저작권자의 공세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소리바다가 폐쇄됨과 동시에 그보다 진일보한 P2P 서비스가 등장했고, 벅스뮤직 폐쇄를 반대하는 네트즌들의 요구 역시 저작권자들의 목소리만큼이나 거세다. 이와 비슷하게 전자책이나 정품 소프트웨어, 게임 타이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등 디지털 저작권 논란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실 디지털 저작권의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정보의 자유 공유가 인터넷의 기본 정신이라 주장하는 네티즌 역시 그동안 공짜로 서비스를 이용해온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다만 인터넷은 공짜라는 의식에 길들여온 저작권자들의 관행과 네티즌의 무감각을 탓으로 돌릴 수는 있겠다.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를 둘러싼 네티즌의 거부감은 단계적으로 해소돼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 동안의 손실을 모두 보전하려고 하는 저작권자들의 과욕 역시 자제돼야 마땅하다. 인터넷은 무료라는 생각을 신념처럼 떠받드는 네티즌이나 현실과 소비자의 감정을 무시한 채 무리한 법 집행을 감행하는 저작권자나 모두 앞선 인터넷 기술 수준만큼의 소양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의약품의 지적재산권을 놓고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통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디지털 저작권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에이즈나 백혈병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약의 특허권 대부분은 선진국이 가지고 있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이것을 치료할 기술은 커녕 약을 사들일 수 있는 국부마저 없는 제3세계 국민들에게 지적 재산권은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른바 지적재산권은 현재 전세계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신약의 지적재산권이든 디지털 저작권이든 시간이 갈수록 저작권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이 시대적 대세라 하더라도 저작권자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 소비하는 자들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저작권자들의 앞날이 마냥 밝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原

2003년 8월 7일 작성 151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