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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가압류, 두 풍경/작문

by K기자 2013. 3. 25.

가압류, 두 풍경/작문

(가압류가) 드디어 끝나는군. 내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했을 때 비웃던 녀석들도 당분간 잠잠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인은 명색이 한 국가의 전직 대통령인데 재산 가압류가 다 무슨 말이냔 말이야. 전직 국가원수를 모독해도 유분수가 있지, 사는 집마저 경매에 붙이는 경우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는 말이지. 다행히 우리 처남이 다시 그것을 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체면 구길 뻔했네 그려. 역시 내가 사람 관리 하나는 잘 한단 말이야. 어려울 때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그 뭣이냐. 진돗개도 마찬가지지. 그 두 마리 샀다가 내게 돌려준 사람이 그랬다던가. 주인을 충실히 따르는 진돗개마저 빼앗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서 그냥 돌려준다고. 백 번 옳은 말이지. 이게 다 내가 그동안 의리 있게 처신한 덕분 아니겠어? 덩달아 의리파로서의 내 이미지도 좋아지고……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라고 하지? 그런 면에서 우리 처남이랑 진돗개 돌려준 백성이랑, 다 내게 있어 우리 진돗개 같은 충신들이야. 암, 그렇고 말고.

(내 인생이) 드디어 끝나는군. 가압류다 뭐다 해서 이리 저리 뜯긴 30만원짜리 월급 인생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내가 이렇게 죽어야 우리 가족들은 그나마 살기가 좀 나아지겠지? 먹는 입이 하나 줄 테니 말이야. 아니야. 돈 버는 사람이 없어지니 더 힘들어질 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노조원들은 살기가 좀 덜 팍팍해질거야. 사람이 죽은 마당에 회사에서도 냉정하게 나올 수만은 없을테니깐. 그러면 우리 노조원들 월급에 매겨진 가압류 딱지도 떨어지겠지? 그나저나 우리 성준이, 성호랑 애들 엄마는 어떻게 될까? 애들 엄마가 식당에서 버는 게 있으니까 먹고 살기는 할텐데. 설마 법원에서 애들 엄마 월급까지 가져가진 않겠지? 남들 다 가는 학원도 못 가보고, 애비 없는 자식이라 기죽고 자랄 내 새끼들아. 아빠를 용서해다오. 추운 날씨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고생하는 우리 조합원들, 부디 몸 성히 행복하게 사시오.

2003년 11월, 법원은 두 사건에 대한 재산 및 월급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인다. 추징금과 벌금을 감당할 수 없음이 밝혀진 그들이었기에 재산과 월급 가압류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법원은 전직 대통령과 일반 노동자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다. 그 결과, 전직 대통령인 그 분에 대한 가압류는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마무리됐고, 그는 그다지 체면 구기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한다. 반면, 전직 노동자 출신의 노조간부는 재산 가압류로 더 이상 잃을 체면도 없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가압류를 두고 벌어지는 이 두 풍경을 통해 우리는 전직대통령과 전직 노동자의 신분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상 같은 법 집행으로 국가권력의 위신을 세우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한다. 139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