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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신호등/작문

by K기자 2013. 3. 25.

신호등/작문

캐나다 밴쿠버에는 신호등이 많지 않다. 큰 길 네거리나 교통량이 많은 도심 한복판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거리를 건널 목적으로 세워진 신호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호등이 없다고 길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 필요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단횡단을 하자니 꺼림칙하다. 한국에서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던 탓도 있지만 먼 나라에 와서 범법자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보고 따라하리라 마음먹고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그냥 길을 건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무단횡단을 하는 어느 누구도 서두르는 이가 없었으며, 느릿느릿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그들 앞에서는 모든 차들이 일단 정지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을 운전자들 역시 태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굳이 예산을 낭비해가며 신호등을 설치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에 돌아와 고향집에 내려가게 됐다. 집 근처에는 평소 교통량이 많지 않아 신호등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건널목만 있던 자리에 신호등이 새로 놓였다. 뿐만 아니라 다음 신호가 바뀔 때까지 시간을 알려주는 점멸기까지 생겨 깜박이고 있었다. 불과 백미터도 안되는 곳에 신호등이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교통사고가 늘어 어쩔 수 없었다는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짧아진 신호등간 거리 때문에 운전자들은 예전보다 더욱 예민해졌다. 신호등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전보다 쓸데 없는 과속을 하는가 하면, 신호 대기중에도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내닫는 모습이 흡사 자동차경주장을 방불케 한다. 인간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신호등이 되려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신호등은 인간과 사회의 규칙을 정해주는 법과 제도에 비유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규제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인간성을 믿고 인간성의 긍정적 면모에 주목한 사람들은 대체로 규제 축소, 규제 최소화를 주장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법과 제도야말로 인간 사이의 분쟁과 이기심을 조율해줄 수 있는 보루라 생각한다. 성선설, 성악설로 대표되는 인간본성 논쟁이 명확하게 결론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가 많은 것이 좋은가, 적은 것이 좋은가의 논쟁도 쉽게 결론지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애초에 인간이 법과 제도 등을 세운 목적은 인간을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법과 제도를 잘 지키기 위해 인간을 보지 못하고 소외시킨다면 이는 목적과 수단이 바뀐 목적전치요,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만들어온 법과 제도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호등이 많아 조급증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없애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렇게 모두 없애버린다면 교통혼잡과 교통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될 것임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법과 제도, 규제들은 혁파돼야 한다. 이같은 작업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역시 인간이다. 이는 법과 제도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신호등이 없어도 보행자와 운전자가 서로를 배려하여 사고를 줄이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 속에 더 큰 신뢰가 자라나 무형의 제도로서 자리잡아야한다는 말이다. 原 1620자

2003년 7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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