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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거짓말/작문

by K기자 2013. 3. 25.

거짓말/작문

아이가 태어나서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는 때는 언제쯤일까. 아마도 어머니 아버지가 무엇인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가 아닐까 싶다. 먹을 것을 사오겠노라고 약속하고 나간 어머니가 빈 손으로 돌아올 때, 일요일에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며 약속한 아버지가 출장을 핑계로 못 간다고 할 때 아이였던 우리들은 실망했고 배신감에 화도 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 거짓말을 계속 하면 할수록 아이는 거짓말에 무뎌지게 된다. 약속 안 지키는 부모에게 짜증이 나다 못해 앙탈은 부리겠지만 거짓말이 이렇게 넘어가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 가는 것이 자기 마음에 편할 줄 몸으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짐 캐리가 변호사로 나오는 미국 영화 ‘라이어 라이어’ (Liar Liar)는 아이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만든 영화다. 변호사 아버지를 둔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거짓말에 매번 속으면서도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번엔 꼭 가자며 약속하지만 약속은 언제나 번번히 깨지고 만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재판에 이겨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라고 본다면 짐 캐리의 이러한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거짓말을 누구보다도 잘 해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그런 거짓말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영화 속의 이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가 단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얘기이겠지만 하느님은 아이의 말을 들어 준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버지 짐 캐리는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나오는 참말을 어찌 하지 못하고 다니게 된다. 사건의 진실을 말해버린 재판에서는 당연히 지고, 겉으로만 좋은 척 하고 지내는 관계도 모두 파탄이 난다. 거짓말은 정교하게 꾸려왔던 그의 인간관계를 헝클어뜨리다 못해 사회생활 모두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는 거짓말을 계속 해야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세계의 어두운 진실, 인생의 진한 역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역설은 우리 정치판에도 통하는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나라당 의원의 100억 수수설만 놓고 보더라도 거짓말은 우리 정치를 꾸려가는 데 중요한 재료다. 비록 나중에 그것이 거짓말로 밝혀져 망신을 당하더라도 일단은 안 받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어 시간을 벌고 보자는 뻔한 속셈을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 문제는 정치인들이 하는 이런 식의 거짓말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지만 그 거짓말이 내 삶에 치명적인 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생의 진실 앞에 우리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다는 말이다. 여당과 야당의 대선자금과 관련해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정치인들의 참말을 듣고 싶다. 영화처럼 하느님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참말만 하게 해서 세상이 좀 혼란스러워지더라도 국민들이 좀 어리둥절해지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1430자 原

2003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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