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다/수상2(隨想二)

2000년을 보내며/작문

by K기자 2013. 3. 25.

2000년을 보내며/작문



● 지난해 말 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Y2K(컴퓨터의 2000년 인식오류 문제)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2000년이 21세기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많은 논증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00년은 21세기의 첫해가 아닌 20세기의 마직막 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새천년이 시작됐다고 흥분했고 뉴 밀레니엄(New Millenium)에는 신선하고 이전과 전혀 다른 사건이 일어나줄 것을 기대했다. Y2K가 가져올 재앙에 대한 불안과 새천년이 가져다 줄 기대가 뒤엉킨 채 200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훗날 우리역사를 돌이켜 볼 때 2000년은 중요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남한의 김대중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서로 만나 손을 맞잡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다. 이어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50년만에 혈육을 찾아 한을 풀었는가 하면 경의선 철도공사가 시작돼 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이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2000년이 늘 좋았던 해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년을 다퉈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유혈충돌은 해를 넘겨 계속될 전망이고 21세기에도 인종, 종교, 민족간의 비극사태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선거문제로 아직까지도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은 어떤가. 사상초유의 대통령선거 재검표 작업을 벌인 미국은 단 몇백표 차로 당선된 대통령을 3억인구의 대표로 인정할 수 있는 가의 문제, 컴퓨터개표와 수작업개표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한가 등의 문제로 아직도 혼란하다. 이 사건은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의 본고장임을 자처해온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이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국내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 비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국민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검찰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결과 검찰수뇌부는 야당에 의해 탄핵소추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며 IMF 졸업을 선언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현대, 대우등 수십년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온 대기업이 쓰러졌는가 하면 한국경제의 첨병(尖兵)이라던 벤처기업들도 속속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취업은 몇 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며 온 나라의 경기가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다.

이제는 버려야 한다. 미래가 가져다 줄 진보를 낙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연말이고 새해니까 단순히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말할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잘못된 전통을 확실히 청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들의 깊은 절망감은 버릴 것을 제 때 버리지 않고서 좋은 일이 일어나주기만 바랄 때 배(倍)가 된다. 새천년, 새세기, 새해를 맞는 지금.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하지만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다시 재기(再起)의 희망을 가져본다. 

2000년 11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