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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조급증, 이제 버리자/논술

by K기자 2013. 3. 25.

조급증, 이제 버리자/논술



● 반미감정이 고조돼 있는 요즘, 한국인을 칭찬하는 미국인이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장인 제프리 존스씨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속도가 중요한 인터넷과 궁합이 잘 맞는다며 한국인이 외치는 "빨리 빨리"가 한국의 정보화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가 이미 한국병으로 진단내린 조급증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그의 견해는 일단 신선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조급증이 다가올 미래사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비단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의 조급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전철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내닫는 사람들과 서로 먼저 가려고 앞지르기를 밥먹듯하는 자동차들이 그렇다. 제한된 시간안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대입수능시험도 우리 국민의 조급증을 가장 잘 반영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단공기를 자랑하는 경부고속도로와 역시 최단기간경신을 경쟁하듯 지은 공장을 바탕으로,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게 이룩한 최단기간내 초고속경제성장은 그동안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쟁력이요, 자랑거리였다.

물론 빠르게 일하는 것에 장점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가지는 최대 약점은 졸속(拙速)과 부실(不實)을 가져온다는 사실에 있다.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기는 대형사고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졸속과 부실로 인한 폐단은 나라와 국민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근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도 내실을 다지지 않고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해 온 결과임을상기해 보자. 구체적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과 혼란을 파헤쳐 들어가다보면 그 원인중에 조급증이 빠지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빨리 빨리"가 과연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과정과 질보다 결과와 속도, 양만을 강조해서는 21세기에 들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해 컴퓨터 속도가 어느 정도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일정 수준의 속도를 내는 컴퓨터를 구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빠르기만 한 하드웨어보다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가 더 각광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속도경쟁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승부가 판가름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요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얼마나 신중히 정성을 들여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맹자는 이런 졸속의 폐단을 설명하면서 우화를 예로 든다. 중국 송나라에 한 성급한 농부가 있었는데 자기가 심은 작물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조바심 끝에 이 농부는 작물의 싹을 잡아당겨 조금씩 뽑아 올렸지만 작물은 다 말라죽고 만다. 비록 남에게 조금 뒤처지더라도 신중하고 성실하여 졸속과 부실의 폐단을 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화는 시사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결과만을 강조한 나머지 이제 막 자라나려하는 싹을 뽑아 올려서는 안된다. 21세기를 맞는 요즘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야할 문제다.

2000년 11월 2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