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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박정희 기념관 건립 재고하라/논술

by K기자 2013. 3. 25.

박정희 기념관 건립 재고하라/논술



★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일장기를 두른 박정희 흉상이 고꾸라진다. 「민족문화연구소」,「서총련」 등 5개 시민단체 회원 20여명은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했다. 이들 단체는『박정희는 기념의 대상이 아닌 청산과 극복의 대상』이라며 『최근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을 확산시킬 목적으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흉상철거등의 불법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비난성명을 내고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 사건의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1997년 말 모 대학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는「박정희 신드롬」의 시발점이 됐다. 『인간복제가 허용된다면 누구를 복제해 되살리고 싶은가』는 질문에 학생들은 박정희 전대통령을 제일로 꼽았다. 이 조사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전까지 미미하던 『박정희 신드롬』은 힘을 얻었다. 이후 각 일간지들은 그의 일대기를 앞다투어 신문에 실었고, 「그 때가 좋았다」식의 여론이 들불처럼 일기 시작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도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한결과다.

신드롬(Syndrome)의 사전적 정의는 '병리증후군, 사회적 유행'이다. 모든 유행에는 이유와 발생 배경이 있듯 박정희 신드롬 역시 김영삼 전대통령의 실정(失政)과 경제파탄이 불러들인 하나의 사회적 유행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주도 하에 6,70년대에 고속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의 희생이 불가피했다」「다른 전직 대통령과 달리 사생활이 깨끗하다」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할만하다는 식의 박정희 옹호론은 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미 죽은 사람, 그것도 비명(悲鳴)에 간 사람을 다시 들추는 것은 설사 그가 악인이라 하더라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거꾸로 뒤집으려 하는 반동(反動)적 움직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 만주군의 장교로 독립운동가를 탄압, 살해하고 쿠데타를 주도한 그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 수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으며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을 꾀한 독재자다. 박정희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경제성장 주역론(主役論)도 최저생계비마저 받지 못하면서 하루 15시간 이상 일한 우리 노동자들을 욕되게 하는 논리다.

존경받을만한 사람을 기념하는 것에 딴지를 걸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박정희가 기념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하는데 있다. 그가 죽은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이런 논란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그를 영웅시하고 미화하려는 정치권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의 의도는 무엇인가. 러시아 민중에 의해 무너진 모스크바레닌 동상이 공산주의 몰락의 상징이듯 박정희 흉상 철거도 그를 기념하려는 반역사적 움직임과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려는 상징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흉상 철거와 관련된 구속자들을 석방하고 아울러 서울 상암동에 짓기로 한 박정희기념관도 그 설립 여부를 다시 검토하기 바란다.



2000년 11월 16일 작성 

다음은 김민환 선생님의 첨삭 내용입니다.



① 문단(40점) : 38

② 문장(30점) : 28

③ 용어(30점) : 25



* 다음과 같은 용어의 사용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반동(反動)적

몰지각한



* 『』「」등의 부호를 남오용하지 마시오.



누구를 복제해 되살리고 싶은가』는 --> 누구를 복제해 되살리고 싶은가, 라는 

「그 때가 좋았다」식의 --> 「그 때가 좋았다」는 식의

러시아 민중에 의해 무너진 모스크바 레닌 동상이 공산주의 몰락의 상징이듯 박정희 흉상 

철거도 그를 기념하려는 반역사적 움직임과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려는 상징에 다름 

아니다 --> 러시아 민중이 레닌동상을 무너뜨린 것이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상징적 행위였 

다면, 박정희 흉상을 철거한 것은 그를 기념하려는 반역사적 움직임과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상징적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