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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지도층의 역할과 책임/논술

by K기자 2013. 3. 25.

지도층의 역할과 책임/논술



★ 동방금고 거액 불법대출 사건,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를 두고 나라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그동안 수많은 부정, 부패, 비리 등을 봐왔지만 그런 부조리를 감시하고 감독해야할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마저도 썩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이 사건을 두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벤처기업인의 타락을 개탄했다고 한다. 김대통령은 이어 "금융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국민의 도덕성이 약화된 것 같다"며 "언론이 도덕성 회복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준씨와 금감원의 일부 공무원들이 저지른 잘못이 이 나라 국민의 허약한 도덕성 탓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다. 캠페인을 벌여야 할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집단의 도덕성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를 내팽겨 둔 채 병상을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간 의사들도 한 때는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었다. 그들은 명분없는 싸움을 아직까지도 계속하고 있지만 '의사 선생님들의 밥그릇 싸움'에 지지를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아예 지지 여부를 떠나 의사들은 국민들의 증오와 짜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교육에 있어 우리나라의 최고위급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교육부 장관의 떳떳치 못한 퇴진도 좋은 예다. 그 자신이 학자출신이면서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채 외국논문을 마치 자기것인양 표절해 책을 냈는가하면,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이중국적을 취득했다. 학자로나 장관으로서나 그는 사표(師表)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모 대기업의 사외이사 때 받은 특혜시비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시민단체는 어떤가. 시민단체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부업성'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수백만원씩의 보수를 받아 구설수에 올라 간판에 내건 '시민'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했다. 또한 몇 달전 일어난 한 환경단체 대표의 성추행 사건은 이제 막 피어나려 하는 시민운동에 찬물을 끼얹어 국민 모두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줬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엘리트집단의 타락은 그 여파가 엘리트사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하층부 그리고 전체 사회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물질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해도 건전한 도덕성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이미 세차례나 방영된 바 있는 드라마 '허준'이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며 '허준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자신의 과거시험을 포기하면서까지 몰려드는 병자들을 정성껏 보살핀 허준의 의로운 모습 등에서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의인(義人)'의 출현을 목말라하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사건이다. 정권실세가 추석연휴 귀경 때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했는데도 "차안에서 잠을 자고 있어 몰랐다"고 하면 되는 나라. 오늘날 한국의 지도층이다.

2000년 11월 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