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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재계 수사, 멈춰서는 안 된다./논술

by K기자 2013. 3. 25.

재계 수사, 멈춰서는 안 된다./논술

정치권과 경제계를 겨눈 검찰의 칼날이 날카롭다. 전에 없이 강도 높은 수사를 하는 검찰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이번에야 말로 잘못된 정경유착의 관행을 뿌리 채 뽑아야 하는 것일 게다. 대선자금을 관리한 정치인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그들에게 돈을 건네준 것으로 알려진 주요 기업 총수가 출국금지를 당하는 것만 보자면 이번만큼은 이전과 다를 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수사가 강도를 더해 갈수록 이번 수사가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수사팀의 의지가 약해질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수사가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우려는 엊그제 LG 홈쇼핑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을 계기로 현실화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출국금지된 상황에서 치러진 압수수색으로 그 회사 주가 뿐 아니라 전체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한 것이다. 압수수색을 했을 뿐인데도 주가가 30포인트나 떨어졌는데 수사가 더 진행된다면 이제 갓 경기침체의 바닥을 벗어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잘 나가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에 대해 출국금지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리한 경제 발목잡기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경제계가 정치권과 검찰에 대해 억울한 감정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전 정경유착 처리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경제계의 이런 볼멘소리를 받아들여 검은돈 수사를 흐지부지할 경우 우리는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때를 영영 놓쳐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설사 나중에 그 기회를 다시 잡게 되더라도 미래에 우리가 감수해야 할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클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얼마전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인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상대로 다른 기업 경영자들에게 한국투자를 권유하겠느냐는 설문조사에서 70퍼센트가 넘는 CEO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말리겠다고 답했다. 전투적 노조, 비싼 생산비 등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그들이 우리 경제계에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불투명한 기업운영이었다고 한다. 정치권의 보복이 두려워 100억을 몰래 준비했다는 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이 몰상식한 현실에 믿음을 가질만한 구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국민들이 응원하고 모처럼 검찰이 수사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지금이 정치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그 때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경제계로서도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이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기고 그래서 기업인들이 더 이상 정치인을 위해 검은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다면 이는 경제계로서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1329자 


2003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