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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집시법 개정안, 철회하라/논술

by K기자 2013. 3. 25.

집시법 개정안, 철회하라/논술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집회와 시위가 많은 해로 기억될 듯하다. 어느 해를 뒤돌아 보더라도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지 않을 테지만 올해가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주요 문제에 이해가 얽힌 이들의 의사표현 방식이 그만큼 격렬했기 때문이다. 새만금 공사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삼보일배 시위,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촛불시위,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화염병 시위 등 자신들의 의사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가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최근 정부가 공권력 강화와 올바른 시위문화를 세우겠다며 집시법 개정안까지 내놓은 것은 그만큼 올해 우리의 집회, 시위가 치열했다는 반증이다.

주요 도심에서의 집회를 아예 못하도록 막고, 집회장소에 사복경찰을 들여보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이번 집시법 개정안을 보면 집회와 시위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이 묻어난다. 그러지 않아도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도심 한 가운데서 치르는 농민들의 가두행진은 농민들의 이해에 별 관심이 없는, 설사 그들을 심정적으로나마 지지하는 보통의 운전자들을 짜증나게 할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시위로 예기치 못한 손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 도심 집회나 확성기 시위로 인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다소 제한하는 법을 내놓게 됐다는 설명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의도가 순수함을 곧이 곧대로 믿어준다 하더라도 이번 집시법 개정안은 재고돼는 것이 옳다. 집회나 시위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의사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場)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의사표현의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체류 기한을 늘려 달라고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눈을 자극해 관심을 끈다. NEIS 도입을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가 외치는 목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우리의 귀를 자극해 시위효과를 내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시각과 청각의 이러한 자극은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겠지만 보통 사람의 일상에 가해지는 자극은 일차적으로 불편일 수밖에 없다. 그 불편함이 크면 클수록 집회나 시위의 효과는 커지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자고 있는 것이 집회고 시위인데, 남들에게 불편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집회나 시위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라 할 것이다.

목소리를 크게 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와 요구를 알리고 싶은 것이 시위대의 최선이라면, 일반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그들을 완전 제압해 공권력의 위신을 과시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최선이다. 두 세력의 최선이 충돌한 결과가 정부의 집시법 개정안이요, 시위대의 화염병, 쇠파이프 시위가 나왔다. 결국 둘 다 잘못했으니 서로에게 자제하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힘이 센 정부의 책임이 큰 문제다. 정부는 6년 전, 정부가 최루탄을 먼저 쓰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자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기하길 바란다. 즉, 최선이 아닌 차선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집시법 개정안을 거둬들이고 올바른 시위문화를 이끌어 낼 다른 좋은 방안을 좀 더 고민할 것을 다시금 촉구한다. 1679자


2003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