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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색맹/논술

by K기자 2013. 3. 25.


색맹/논술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하겠다고 해 지금은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듯 하지만 송두율 교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다. 그가 북한 노동당에 들어간 사실이며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점이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지만 논란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불법행위를 한 송 씨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올 생각을 했고 또 누가 그의 입국을 도와주었는가가 논란의 핵심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송씨가 입국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와 방송이 짜고 도와줬기 때문이라며 정부내 간첩암약설과 한국방송 사장 간첩 연루설 등 지난 주 내내 맹공을 퍼부었다. 주요 일간지들도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주 내내 이러한 의혹을 머릿기사로 다루며 정부와 방송을 압박하고 있다. 요컨대 색깔론 정국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걸고 넘어진 색깔론의 면면을 살펴보면 억지스러운 점이 많았다. 김영삼 정권 초기 통일원 장관을 지낸 환완상 전부총리는 앞의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선보여 국민들의 주목을 끈 이른바 진보 성향의 관료였다. 그런 그가 장모 장례기간 중에 빨간 넥타이를 차고 업무를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보수 언론들은 북한과 가까운 한 씨가 빙모 장례기간중에도 빨간 넥타이를 찬 것은 북한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냐며 야단을 떤 적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지난 대선 때 당시 보수집권당은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그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적성국인 북한에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어이없고 치졸하기 그지 없는 색깔시비요, 정치공작이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이 같은 색깔공세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벌 씩 사서 입었음지한 'Be the Reds' 티셔츠가 별 저항감 없이 인기를 끈 것도 이런 변화의 한 예다. 불과 십 년 전의 사고방식대로라면 '붉은 것들이 되자'는 붉은 악마 응원단 티셔츠의 글귀는 보수 언론에 의해 우리나라 체제를 뒤엎을만한 무시무시한 선동쯤으로 매도됐을 지도 모른다. 옛날 같았으면 북한과 화해하자고 말한 것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렸을 법한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도 색깔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색깔론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눈이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송두율 씨 문제를 다루는 보수세력의 두뇌회로는 예전 그대로다. 자발적으로 입국한 송씨를 멋대로 간첩으로 규정하고 정부와 공영방송 안에 간첩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며 야단을 떠는 모습이 십년 전 한 전 부총리를 야단치던 모습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송 씨가 우리나라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것은 법대로 다루면 된다. 하지만 빨간색만 보다 빨간색이 눈에 남아 그렇지 않은 것까지 빨간색으로 보려는 정치적 의도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관련 없는 사람들을 끌어다 빨갱이로 매도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설 자리를 넓히려는 보수야당과 일부 언론들은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빨간 것이 아닌 것을 빨간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정치적 색맹들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2003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