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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 4편 "언론은 어디에?" 4. 33년 전 오늘 4편 "언론은 어디에" http://zxy.kr/077 (앵커) 5.18 당시 신문과 방송은 사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습니다. 이같은 언론 부재 속에서 시민들은 유인물과 가두방송으로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광주문화방송 건물이 불타고 있습니다.(1980년 5월 20일 화요일. 낮에 비(12mm) 낮최고 17.5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 데 분노한 시민들이 이날 밤 MBC와 KBS 등 방송국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항쟁 기간 동안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던 방송들은 전두환 집권 내내 땡전뉴스로 전락했습니다. (녹취)KBS 특별기획 '광주사태'(1985.. 2013. 6. 18.
33년 전 오늘 3편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3. 33년 전 오늘3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http://zxy.kr/076 (앵커) 광주MBC 5.18 연속 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오늘은 비극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과 대검에 당시 금남로는 피로 얼룩졌고 시민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한 시민이 쓰러져 있습니다. (1980.5.19.월요일, 밤부터 비(5.6mm), 낮최고기온 22도) 머리가 피투성이인 이 남자,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는 표정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겁니다. (인터뷰)최병귀/ 5.18 유공자(화면 속 피 흘리는 당사자) "저도 이해가 안가요. 그게. 우리가 나쁜 짓을 하고 그랬다.. 2013. 6. 18.
33년 전 오늘 2편 "5.18은 왜 광주였나" 2. 33년 전 온르2 "5.18은 왜 광주였나?" http://zxy.kr/075 (앵커) '5.18은 왜 하필 광주에서 일어났나?' 이런 의문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신군부 명령에 따라 계엄군이 유독 광주에서 살인 진압을 펼쳤고 시민들은 이런 불의에 맞서 적극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33년 전 오늘,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일요일이었습니다. (1980.5.18. 일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5.1도) 시민들이 휴일의 여유를 즐길 무렵인 오전 10시, 전남대는 분위기가 심각했습니다. 학교를 장악한 계엄군과 학생들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진 겁니다. 5.18의 신호탄이 되는 사건입니다. 계엄군은 닥치는대로 곤봉을 휘둘렀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끝까지 쫓아가.. 2013. 6. 18.
33년 전 오늘 1편 "항쟁이 있기까지" 1. 33년 전 오늘 "항쟁이 있기까지" http://zxy.kr/074 (앵커) 북한군이 개입했다거나 폭도들의 폭동이라는 극우세력의 5.18 왜곡과 폄훼 주장.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분노하지만 정작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아는 이들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광주MBC는 33년 전 그 때로 돌아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오늘은, 항쟁이 있기까지의 상황을 김철원 앵커가 설명합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 광주 날씨는 쾌청했습니다. (1980.5.17.토요일. 맑음, 낮최고기온 20.9도) 하지만 도청 주변 공기는 매캐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며 사흘 연속 시위를 벌인 광주시민들이 16일 밤에는 마지막.. 201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