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다/방송과 기사

33년 전 오늘 1편 "항쟁이 있기까지"

by K기자 2013. 6. 18.

1. 33년 전 오늘 "항쟁이 있기까지"


http://zxy.kr/074






(앵커)

북한군이 개입했다거나 폭도들의 폭동이라는 극우세력의 5.18 왜곡과 폄훼 주장.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분노하지만 정작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아는 이들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광주MBC는 33년 전 그 때로 돌아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오늘은, 항쟁이 있기까지의 상황을 김철원 앵커가 설명합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 광주 날씨는 쾌청했습니다. (1980.5.17.토요일. 맑음, 낮최고기온 20.9도) 

하지만 도청 주변 공기는 매캐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며 사흘 연속 시위를 벌인 광주시민들이 16일 밤에는 마지막으로 횃불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인터뷰)김상윤/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런 현장은 애들한테도 보여줘야된다 그래가지고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애들을 목마 태워가지고 나와서 성회를 보여주면서 환희의 축제같은 시위였습니다."

3만명 넘는 인파가 매일같이 몰렸지만 집회는 평화로웠습니다.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고 집회가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뒷정리를 했습니다.

당시 집회에서는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호소력 있는 연설이 큰 화제였습니다.

(녹취)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1980.5.16.당시 육성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성회를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것이요.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오랜만에 집회 없는 토요일이었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 계획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12.12 반란을 통해 군사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정치권력마저 삼키기 위해 이 날 쿠데타를 감행한 겁니다.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집회와 파업 금지, 언론의 사전검열, 대학엔 휴교령을 내리는 등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를 정지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학생 등 전국의 시국인사 3천명을 심야에 불법 체포했습니다.

(인터뷰)유시민/전 보건복지부 장관
"저는 5월 18일 0시 되기 직전에 학교에서 체포가 돼서 합동수사부로 넘어가 있었고, 실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 전혀 몰랐어요. 일주일동안."

전국의 주요 시설과 대학에는 육군 최정예부대인 공수특전사 군인들을 투입했습니다.

전남대와 조선대에도 17일 밤, 7공수여단 9백명의 군인들이 투입됐고, 한밤중에 시국인사 8명과 학생 112명을 잡아들였습니다.

(인터뷰)윤목현/광주전남 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
"(지프차) 4대가 여기서 동시에 대기하고 있어서 그대로 바로 두번째 차에 내가 끌려서 지금 송정리 넘어가는 잿등 좌측에 있는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들어갔습니다."

(스탠드업)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동안 계엄군의 총칼에 무고한 시민 165명이 숨지고, 3천명이 넘게 다친 광주의 핏빛 오월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
C.G. 김주호, 오청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