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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스승(작문)

by K기자 2013. 3. 25.

언론사 시험 준비하던 2003년 6월12일 작성



스승 (작문)

내게는 지금도 찾아 뵙는 고등학교 은사님이 있다. 지금이야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찾아 뵙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이 분해 졸업하면 연락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었다. 호랑이 같던 그 스승이 이제 학생들이 대들까 무서워 매 들기가 겁난다고 고백을 했다. 제자가 스승을 때리고, 고발까지 하는 오늘날의 세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내 스승으로부터 얘기를 직접 들으니 섬뜩한 기분이 든다. 최근의 교장 자살 사건, NEIS 사태와 맞물려 스승의 권위는 이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흔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이만큼 일으킨 공로로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꼽는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식을 줄을 모른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OECD 국가 중 공교육비와 사교육비 지출에 있어 최고를 기록한 것이나 OECD 평균을 상회하는 전체 국민 대비 고교 졸업생 비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육내용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교육제도다. 전근대 시절의 교육이 한 사람의 지식인에 의해 지식 습득과 인성함양을 동시에 목표하는 전인교육이었다면 오늘날의 교육은 그 내용과 제도에 있어 그 전보다 전문화, 세분화됐다고 할 수 있다. 역할이 바뀐 만큼 스승에 대한 개념이 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변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스승상(像)을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 전교조로 대표되는 ‘스승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그렇다. 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NEIS 사태 등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도 스승과 관련한 우리의 혼란한 의식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제의 훈장들이 오늘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교사들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스승’으로서의 격(格)을 스스로 포기하는 짓이라고 호통을 칠 것이 분명하다. 한편 오늘날 전교조 교사들이 보기에 그림자도 밟기 어려워했다던 옛 훈장의 권위는 이미 오늘날 찾아 보기 힘든 낡은 가치다.

후생(後生)들을 위해 애쓰는 선생(先生)들의 노고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우리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시대가 지나도 변치 말아야 할 덕목이다. 아울러 전교조 교사들의 참교육을 위한 열정 또한 무시돼서도 안된다. NEIS 반대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분명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승은 시대 변화에 걸맞는, 그러면서도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갖춘 모습의 스승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육계의 분란을 해결하고 새로운 참 스승상을 보여줄 수 있는 스승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原)

1315자 (75분) 2003년 6월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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