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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13

33년 전 오늘 7편 "미궁의 민간인 학살" 7. 33년 전 오늘 7편 "미궁의 민간인 학살" http://zxy.kr/07a (앵커) 5.18 때 계엄군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저항 의사가 없는 고령의 노인과 만삭의 임산부,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조준사격으로 사살했습니다. 이 민간인 학살도 아직껏 그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도청에서 철수한 계엄군들이 광주와 화순을 잇는 외곽도로를 막고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습니다. (1980.5.23.금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5.8도)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주남마을 앞 도로에서는 33년 전 오늘, 계엄군이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던 미니버스를 집중사격했습니다. (인터뷰)신길순/농민(주남마을 주민) "집에 오는데 냄새가 펄펄 나. 몇 명이 죽은 줄 몰라. .. 2013. 6. 18.
33년 전 오늘 6편 "시민공동체의 등장" 6. 33년 전 오늘 6편 "시민공동체의 등장" http://zxy.kr/079 (앵커) 광주MBC 5.18 연속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이번 시간엔 항쟁 열흘 동안 시민들이 보여준 헌신과 도덕성, 그리고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조명해보겠습니다.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서로 돕고 나눴던 대동의 기억이 생생하실 겁니다. 김철원 앵커와 함께 그 때로 돌아가 보시죠. (기자) 계엄군이 물러가고 해방 광주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1980.5.22.목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8도) 도청 앞 광장엔 계엄군을 몰아냈다는 기쁨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녹취)"내가 원수를 갚겠습니다. 제가 총 쏴서 죽여버릴거다. 이 개새끼들아. 아~"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자식의 이름이 저.. 2013. 6. 18.
33년 전 오늘 5편 "누가 시민을 쏘았나" 5. 33년 전 오늘 5편 "누가 시민을 쏘았나" 도청 앞 집단발포 http://zxy.kr/078 (앵커) 33년 전 오늘은 5.18 열흘 동안의 최대 비극인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날입니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총을 쏜 이 충격적 사건은 아직껏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평일이었지만 부처님 오신날이라 쉬는 날이었던 수요일, 금남로엔 아침부터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렸습니다. (1980.5.21.수요일.맑음. 낮최고기온 26.1도) 어림잡아 10만명의 군중들이 전날 밤샘시위에 이어 계엄군을 도청 쪽으로 압박했습니다. 그 자리엔 까까머리 고교생 강용주 군도 있었습니다. 강군은 계엄군도 우리 국민인데 땡볕에서 고생한다며 물을 떠다 줬습니다. 그 때가 오후 1시쯤.. 2013. 6. 18.
33년 전 오늘 4편 "언론은 어디에?" 4. 33년 전 오늘 4편 "언론은 어디에" http://zxy.kr/077 (앵커) 5.18 당시 신문과 방송은 사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습니다. 이같은 언론 부재 속에서 시민들은 유인물과 가두방송으로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광주문화방송 건물이 불타고 있습니다.(1980년 5월 20일 화요일. 낮에 비(12mm) 낮최고 17.5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 데 분노한 시민들이 이날 밤 MBC와 KBS 등 방송국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항쟁 기간 동안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던 방송들은 전두환 집권 내내 땡전뉴스로 전락했습니다. (녹취)KBS 특별기획 '광주사태'(1985.. 2013. 6. 18.
33년 전 오늘 3편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3. 33년 전 오늘3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http://zxy.kr/076 (앵커) 광주MBC 5.18 연속 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오늘은 비극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과 대검에 당시 금남로는 피로 얼룩졌고 시민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한 시민이 쓰러져 있습니다. (1980.5.19.월요일, 밤부터 비(5.6mm), 낮최고기온 22도) 머리가 피투성이인 이 남자,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는 표정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겁니다. (인터뷰)최병귀/ 5.18 유공자(화면 속 피 흘리는 당사자) "저도 이해가 안가요. 그게. 우리가 나쁜 짓을 하고 그랬다.. 2013. 6. 18.
33년 전 오늘 2편 "5.18은 왜 광주였나" 2. 33년 전 온르2 "5.18은 왜 광주였나?" http://zxy.kr/075 (앵커) '5.18은 왜 하필 광주에서 일어났나?' 이런 의문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신군부 명령에 따라 계엄군이 유독 광주에서 살인 진압을 펼쳤고 시민들은 이런 불의에 맞서 적극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33년 전 오늘,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일요일이었습니다. (1980.5.18. 일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5.1도) 시민들이 휴일의 여유를 즐길 무렵인 오전 10시, 전남대는 분위기가 심각했습니다. 학교를 장악한 계엄군과 학생들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진 겁니다. 5.18의 신호탄이 되는 사건입니다. 계엄군은 닥치는대로 곤봉을 휘둘렀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끝까지 쫓아가.. 2013.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