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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언론

2004.11.26 MBC여! 17년 전의 정신으로..

by K기자 2017. 2. 2.


MBC여! 17년 전의 정신으로.. 


번호 작성자 이상호 작성일 2004/11/26 09:34 조회 2189 

얼마전 MBC 보도국 사내 게시판에 성명서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지난 80년대 방송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선배들의 공동성명이었습니다. 구구절절 가슴깊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독재치하 너나할 것 없이 숨죽이던 보도국에서 기자됨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앞장섰던 분들.. 바로 그분들이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특별히 잘나가지 못하시고 옳고 바르되 메인스트림은 아닌 '일군'을 이뤄오신 분들이지요. 자신들이 주도한 방송 민주화의 성과는 항시 그렇듯 두번째 줄에서 숨죽이고 있던 자들이나 아예 뒷짐지고 구경하던 자들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 분들이 다시 함께 입을 모은 내용은 한마디로 'MBC 보수화 회귀반대'였습니다. 천박한 시장의 논리에 방송마저 내던지려는 철학없는 경영층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뉴스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조중동 따라가기에 급급한 보도사령탑에 대한 따끔한 일갈도 빼놓지 않았지요. 

지금 성명에 참여하셨던 분들..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사측에서는 단단히 화가난 모양입니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지금 MBC는 갈림길에 놓여있습니다. 

선배들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입니다. 구세대(?)들이라 한자가 많이 섞여있네요. 속보가 있으면 이곳에서 계속 알려드리겠습니다.

<17년 전의 정신으로...>

다음달 2일이면 문화방송이 創社 43 주년을, 8일이면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創立 17 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문화방송은 눈부신 성장과 안정을 이룩했습니다. 모질고 험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가위눌림과 민주화 과정에서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떠올리면 이 만큼의 成長과 安定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이 정도 현실에 安住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심정 또한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소임이 나라의 公營放送으로서, 그리고 最高 言論社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나아가 21세기 放送文化를 先導하는 데 있음을 상기하면 自愧心 마저 듭니다.
昨今의 우리 현실을 되돌아봅시다. 방송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우리보다 어려운 동지로 보고 동조파업까지 하며 지원했던 KBS는 그 影響力이나 公營性, 改革性에서 우리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쟁상대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後發 민영 상업방송사가 우리의 도덕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한 냉정한 시청자들의 이탈은 계속될 전망이고, 우리의 위상이 시중 방송사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어느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좋은 게 좋다'는 家族主義的이고 溫情主義的 풍토에 매몰돼 있습니다. 당장의 평온을 깨뜨리기가 성가시고 불필요한 오해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位相墜落 또한 가속화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도국 기자로서 노동조합 전임자였던 우리는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그리고 참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 회사의 위상추락의 원인이야 보는 눈에 따라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원들의 責任意識 缺如와 그에 따른 부문별. 장르별 競爭力 低下. 그리고 경영진의 無能과 展望 不在, 統合.調整 能力의 상실이 가장 큰 이유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MBC 뉴스와 관련해 보도부문의 문제만을 제한적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MBC뉴스는 時代逆行的인 保守化와. 冷戰志向的이고 反改革的인 旣得權 擁護의 偏向性을 露呈하고 있습니다. 미미하나마 군사독재시절에도 추구하고 보여주었던, 그래서 MBC뉴스의 정체성으로 인식되었던 民主指向的 改革性을 홀대한 지 오랩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바뀌고, 시청자들이 변하고, 정치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우리 뉴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上命下達식 作爲的 報道가 난무합니다. 기자들은 一等意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영향력 또한 현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런 차제에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議題設定 기능을 기대하기는 難望합니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가장 큰 원인은 보도책임자들의 哲學不在입니다. 民主化와 改革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 항상 아랫목과 陽地만을 지향해 온 인사들이 보도의 방향과 인사를 좌지우지한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그 결과 편집회의에서의 내부 비판은 물론 최소한의 토론도 발붙일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아래로부터의 推動되는 淸新한 기풍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현실과 원인을 정확히 바라보고 겸허히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억압받지 않는 良心과 토론을 통한 均衡, 조직 내부에서의 言論自由를 통한 民主化라는 언론의 보편적 가치를 먼저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난 87년 방송민주화 추진위원회 활동과 노동조합 창립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 갈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안이 MBC뉴스의 부활을 위해 가감없이 받아들여 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4년 11월 23 일
81년부터 87년 사이 입사한 보도부문 노동조합 전임자 11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