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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언론

방송사고의 추억 - 방송기자에게 방송사고란....

by K기자 2015. 6. 21.

방송사고의 최고봉을 보여준 V for Vend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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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MBC 김철원 기자

 

 

방송사고의 추억, 방송기자들에게 방송사고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날씨 중계차, 앵커의 콜을 받았지만 머리가 갑자기 하얘지면서 외웠던 앞 구절을 기억해내지 못했을 때, 혹은 한 번 터진 웃음을 수습하지 못한 앵커의 표정 등이 아닐까? 방송기자 본인은 나중에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겠으나 시청자에게는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해프닝쯤 되지 않겠나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심각한 내용도 없진 않다. 전두환 정권인지 노태우 정권인지 모를 하여튼 군사독재정권 시절, “내 귀에 도청장치”를 외치다 스튜디오에서 끌려 나갔던 바로 그 사고 말이다. 그 때 끌려 나가던 청년의 몽롱한 눈빛과 수습하던 앵커의 황망한 표정은 사람들의 뇌리에 아직도 깊이 박혀 있다. 청년이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비록 당시의 독재정부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철통같던 스튜디오에 난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시 철옹성 같았던 독재 정권에 한 방을 날린 것 같은 묘한 감정을 일으켰던 바로 그 방송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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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핵심 키워드는 방송과 방송사고다. 감청과 통금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2040년 영국의 독재 정부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방송은 국영방송 BTN이다(공영방송 BBC가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암시는 중요하다). 시민들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보긴 하지만 독재 정권의 나팔수 방송을 믿지는 않는다. 복수의 화신인 주인공 V가 성벽을 폭파한 사건도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던 건물 기술자들의 불꽃놀이로 날조하는 BTN의 보도는 어딘지 모르게 오늘날 우리의 처지를 영화 속 그것과 비교하게 만든다. 주인공 V는 바로 정권에 장악된 방송을 테러를 통해 다시 장악하고 미리 준비해둔 자신의 메시지를 전국에 전파한다.

 

 

질식할 것만 같은 독재정권, 영원할 것만 같던 철권통치에 균열이 생긴 건 바로 테러 수준의 이 방송사고를 통해서였다. 주인공 V가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통해 남긴 메시지는 대화였다. ‘권력은 국민들이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대화는 항상 저들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대화는 항상 방법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에게 끔찍했을 방송사고가 마침내 끝나자마자 앵커는 테러가 진압되었고, 주인공이 사살됐다고 보도했지만 진실에 이미 눈뜬 시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둘 수는 없었다.

 

 


방송사고를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느낀 시민들은 정의와 저항, 실천을 다짐한다. 그리고 약속의 날인 11월 5일, 저항의 상징이자 주인공 V가 썼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수십만의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들을 딛고 서서 마침내 승리한다. 누군가는 주인공의 현란한 액션을, 누군가는 영국 국회의사당 빅벤의 폭파장면을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지만 내게 있어 영화의 압권은 저마다 같은 가면을 쓴 시민들이 한 데 모여 군인들의 총칼을 무력화 시키는 장면이다. (자국민을 향해 끝내 발포하지 못하는 영화 속 영국 군인들의 모습은 5.18 때 자국민을 사살했던 계엄군의 모습과 반대로 포개져 보인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워쇼스키 형제는 2006년에 이 영화를 내놓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접한 건 국회가 언론관계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종편 탄생의 토대를 만들어줬던 2009년 여름이었다. 언론인들을 탄압하면서 정권에 유리한 언론 환경을 만들려 안간힘을 기울이는 MB 치하의 현실과 영화 속 영국 사회가 다르지 않게 보였다. 하여 나는 그날 이후부터 트위터(@panicanic)나 페이스북(/panicanic) 등 각종 SNS 프로필에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권에 장악된 방송, 뿌리째 훼손된 언론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소망인 셈이다.

 

 

지인들은 묻는다. 가면을 언제 벗을 것이냐고. 나는 대답한다. 해고된 동료 기자들이 복직되고, 언론자유가 회복되는 날 벗을 것이라고. 총선이 끝나면 벗을 수 있을까, 대선이 끝나면 벗을 수 있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 기약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선거가 끝나고 영화를 다시 보니 힐링이 좀 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난 선거가 슬펐던 이들에게, 힐링이 필요한 언론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반대로 지난 선거가 기뻤던 이들에게도 성찰 차원에서 아주 의미가 없진 않겠으니 관람을 권한다. 끝으로 주인공 V의 영화 속 대사로 글을 맺는다. “이 마스크 뒤에는 살점 이상의 것이 있소. 그것은 신념이오. 신념은 총알로 죽일 수 없소.”


원문링크 http://reportplus.kr/?p=5788


방송사고동영상 http://youtu.be/fl3COovGwME

 

 

 

 

 

 

1812 OVERTURE  해당동영상 http://youtu.be/D7lyXiely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