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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1(隨想一)

재신임 정국 감상법/논술

by K기자 2013. 3. 25.

재신임 정국 감상법/논술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역사상 전례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 국회운영에 허덕이는 여당이 그 세를 불려나가기는커녕 반토막이 났는가 하면, 임기가 4년 넘게 남은 대통령은 당적도 없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대통령이 스스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해 세계 정치사를 둘러봐도 그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는 재신임 정국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결과가 부정적인 것일 경우 우리는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어야 할 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이 앞으로 몰고 올 나라의 혼란이 불보듯 뻔하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신임 이후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재신임하든, 불심임하든 그것이 몰고 올 파장은 우리 정치에 도움될 가능성이 많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노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보자. 아직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이 측근 인사의 비리로 물러나게 될 경우 이는 곧 우리 정치권 전체의 물갈이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정치 권력자도 개인 비리로 물러난 마당에 비리 의혹이 있거나 전력이 있는 정치인들이 불신임 이후에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면이 없지 않지만, 대통령 보궐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 중에서 구린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나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과가 불신임으로 날 경우 이는 우리에게 썩을대로 썩은 정치판을 갈아 엎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이다. 


만약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받는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 이후 지지층이 결집하는 등 벌써 그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우선 노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있어서 소신을 펼치는 데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게 되기까지는 개혁을 하고 싶어도 수구국회와 보수언론이 그것을 추진할만한 뒷받침해주지 못했던 책임도 크다. 대통령이 야당도 끌어 안지 못하는 정치력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 수 있냐는 비판도 일리는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재신임을 통해 대통령이 정국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그가 생각하는 정치개혁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최소한 집권층이 정치적 열세를 뒤집기 위해 반개혁 세력과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재신임은 큰 의의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반민주세력과 야합한 집권층을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는 책동이라고 무던히도 비판하지 않았던가.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대통령의 재신임 결정을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발상이라며 연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재신임 발표 직후에 하루 빨리 국민투표를 치르자고 덤볐던 그들의 처음 자세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재신임 정국이 자기들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임을 간파한 그들이 오히려 정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도 정치인의 한 사람인 이상, 정치적 전략인 정략을 쓸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노대통령을 비판하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 정치인들이 노대통령에게 정략을 쓴다고 비판하는 것은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뱉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와 대통령은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한다고는 하지만 재신임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혼란과 비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거쳐 우리 정치판이 옳게 자리 잡히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정도의 기회비용은 오히려 저렴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 결론나는지 차분하고 냉정하게 지켜보자.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 여러 분야 중 가장 저질이라는 정치권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03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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