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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방송과 기사

열없는 질문에 열쩍은 답변

by K기자 2015. 7. 12.

도와줘놓고 도움받아서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것만큼 부끄럽고 뻘쭘한 게 없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연출된 리포트다.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닐진대 열없는 질문에 열쩍은 답변은 기록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아무튼 힘들었던 취재였다. 아이티 청년은 도와주는 이들에게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던데 그건 또 어디서 배운 문화인 것인지 궁금했고 그게 만약 몇 푼 안되는 도움에 대한 답례라고 교육받은 것이라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을테다. 


<아이티의 태권청년 알티도르 마켄스씨, 어찌나 예의바르고 열정적인지...>



쿠바 선수 취재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취지는 올해 초 미국-쿠바 간 국교정상화 이후 미국이 쿠바선수단을 설득해 대회 개막 직전 같이 출전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요지였는데 사실이라면 우리의 남북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겠다 싶어 섭외에 나섰었다. 하지만 막상 쿠바 선수들은 '미국 선수단의 참가 독려 때문에 출전한 것 아닌가요?' 내가 이런 질문을 하자 불쾌해하는 기색을 비쳤다. 자신들은 미국이 아닌 FISU의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출전한 것이라며 대회 참여는 몇 달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단다. 여튼 이 자리에서도 나는 열쩍은 기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한들 하나의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가 가자고 설득한다고 해서 안 갈 대회를 가고, 갈 대회를 안 가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쿠바와 같은 자존심 센 나라에서. 쿠바 선수의 존재를 알려준 취재원의 의도대로 기사를 썼다간 자칫 나라간의 분쟁을 일으킬 소지도 있었다. 




<남자 유도 81kg급 빅토르 마르티네스(23)와 여자 유도 57㎏급의 아나이리스 도르비그니(23) 선수, 사진: 전남일보> 전남일보 기사보기-> http://goo.gl/r60Vns


하여튼 그래서 나온 기사가 이렇다.





(앵커)
고국의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U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겁니다.

지진 참사의 고통을 겪은 네팔이나 아이티 선수들도 이런 경우입니다.

광주는 이 선수들을 특별히 환대했고, 선수들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철원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응원하는 동료, 도와주는 코치 한 명 없지만 섬나라 아이티에서 온 태권청년 알티도르 마케슨씨의 눈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비록 1차전에서 탈락했지만 메달보다 값진 마음을 안고 고향에 돌아갑니다.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청년이 태권도 장비 하나 없이 홀로 U대회에 참가하고 있다는 소식에 광주시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장비도 사주고, 장학금도 마련해줬습니다. 

(인터뷰)알티도르 마케슨 씨/아이티 태권도 대표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을 사랑합니다. 그 분들이 있어서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네팔 선수단이 5.18 묘지를 찾았습니다.

지진참사로 경기 참여를 포기할 뻔한 상황이었는데 광주시민들이 마음을 모아준 덕분에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며 거듭 고마워했습니다.

(인터뷰)프라딥 조시/네팔 선수단장
"우리는 지금 지진이라는 재앙과 싸우고 있습니다. 저희를 도와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와 국교 관계가 없는 쿠바도 2명의 유도 선수를 U대회에 보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 참가 못할 처지였지만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의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받아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쿠바 선수는 경기를 뛸 수 있게 된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인터뷰)아나이리스 도르비그니/쿠바 여자유도 대표
"한국이 친절하고 아름다운 나라라는 걸 듣고 
정말 알고 싶고 와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그렇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이들 선수들은 고국에 돌아가 광주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겠노라고 공통적으로 다짐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보여 준 연대와 나눔의 뜻이 U대회를 매개 삼아 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