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다/수상2(隨想二)

동거 죄악시 풍토는 해소돼야 옳다/논술

by K기자 2013. 3. 25.

동거 죄악시 풍토는 해소돼야 옳다/논술


동거가 유행이다. 여론조사를 봐도 대중매체를 봐도 동거를 하지 말아야할 것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는 듯하다. 얼마 전 젋은이들과의 대화를 가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백 번이라도 (동거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결혼제도가 생기고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으면서 동거는 여러 이유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됐다. 오랜 세월, 백안시돼왔던 동거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복잡한 논란을 안고 있다. 지금 재조명되고 있는 동거는 이전과 색다른 양상으로 논의가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동거를 찬성하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늘었다지만 동거하는 이들을 죄인 다루듯 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는 여전하다. 자신의 동거는 과반수가 찬성하면서도 동거한 적이 있는 배우자를 맞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과반수가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동거를 바라보는 이 같은 이중잣대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동거에 보수적임을 말해준다. 동거가 성관계를 전제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혼전순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동거 반대론자들이 성도덕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동거반대의 논리로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성관계만을 노리고 동거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있고, 동거로 미혼모가 된 여성의 수도 적지 않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동거 때문에 사회가 불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질서마저도 바뀌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맞는 지적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쉬운 동거문화가 퍼지면 가족제도 역시 무너져 우리 사회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다. 사회에 안정적으로 구성원을 대주던 가정이 무너질 때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거반대론자들 못지 않게 동거찬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 또한 팽팽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동거가 합리성의 결과임을 강조한다.‘살아보고 결혼하자’는 것이 모르고 무작정 결혼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동거를 반대하는 이들은 다만 자기 인생의 몇 십년 앞을 결정하는 결혼을 좀 더 신중하게 하자는 것이지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며 입을 모은다. 


그러나 찬성론자들 주장대로라면 동거가 이혼율이 줄게한다는 증명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증거를 찾기 힘들다. 우리보다 동거문화가 보다 널리 퍼져 있다는 유럽과, 국가가 나서서 동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프랑스를 보더라도 이들의 이혼율은 결코 낮지 않다. 동거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식의 동거가 자리잡는다면 가족제도가 더 빨리 무너질 수 있으리라는 내다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동거권리는 사회안정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제돼야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동거유행이 오늘날 우리 가족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남성이 우월한, 가부장제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남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하물며 이혼을 죄악시하는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이혼을 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고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같이 생활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일이기에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외침은 호소력 있다. 결혼이란 것도 처음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일진대 그것이 절대선인 것처럼 돼버린 오늘날의 결혼제도는 분명 여러가지 사회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은가. 


동거를, 제도화하지 않은 삶의 방식으로 본다면 결혼과 이혼은 법이 정한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결혼만을 축복하고, 동거와 이혼을 죄악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든 동거든 이혼이든 결국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동거를 했다고 해서, 이혼한 전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개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동거와 이혼을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는 바뀌어야 옳다. 


남는 문제는 이미 생겨난 동거부부로 말미암아 생기는 여러 문제를 어떻게 없애는 것인가다. 프랑스처럼 동거를 가족제도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이르다면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도 만들어 도움을 주는 일이 시급하다. 이는 동거를 장려하자는 말이 아니다. 동거부부를 사회의 무관심으로부터 지켜줘야 한다는 말이다. 동거문제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지양하고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03년 작성

'쓰다 > 수상2(隨想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용카드/논술  (0) 2013.03.25
KBS 전국노래자랑/논술  (0) 2013.03.25
한총련, 자기 반성부터 하라./논술  (0) 2013.03.25
북핵 문제의 해법 /논술  (0) 2013.03.25
김운용 파문, 진상조사가 먼저다.  (0) 201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