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자기 반성부터 하라./논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벌인 어제 시위는 충격적이다. 대학생들의 반미 시위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저지를 뚫고 벌인 시위이기에 충격을 넘어 아연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그들이 점거한 것이 미군 내에서도 최강의 부대로 손꼽힌다는 스트라이커 사단의 브래들리장갑차라니 세계 최강인 미군과 싸워 이긴 그들을 자랑스러워해야하는가 하는 쓴 웃음마저 나온다.
전국의 미군 훈련장을 기습해 연행된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군사 독재 시절, 그들의 선배들이 해왔던 주장과 다르지 않다. 반미와 통일을 외치는 구호내용은 물론이고 기습적으로 시설을 점거해 버리는 깜짝시위 방법까지 그들의 행태는 선배들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반미를 외치는 그들의 주장이야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이해한다 치자. 그러나 미군 장갑차에 뛰어 오르는 그들의 돌출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미문화원 점거와 같은 그들 선배 세대의 시위 방식은 어느 한 편으로 수긍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의 시위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시위를 하더라도 언론에 재갈을 물려 보도를 막았던 이전 군사정권 하에서는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수단이 아니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깜짝시위를 해서 알려야할 만큼 언로가 통제돼 있지도 않을 뿐더러 국민들이 미국을 바라 보는 시각 또한 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같은 돌출행동이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될 수 없다. 오늘날 거론되는 국민의 반미정서는 그들의 폭력적 돌출행위로 분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년의 촛불시위와 같은 합법적, 평화적 방법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한총련 간부들에게 내려진 수배를 해제, 불구속 수사방침을 발표한 정부 당국에게도 이번 사건은 커다란 짐이 될 듯 하다. 한총련과 관련한 유화정책을 내놓은 지 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학생들에게 또 한 번 배신을 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연출된 바 있다. 노대통령이 한총련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을 철회하고, 대의원들에게 내려진 수배조치를 해제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한총련은 노대통령의 기념식 출입을 막은 채 생경한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한총련은 자신들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이에 역행하는 돌출행위를 계속해 와 그나마 그들에게 동정적이었던 국민들조차 실망시켰다. 혹시 정부가 내놓는 유화정책을 곧 자신들의 지지로 착각하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한총련은 자기 주장을 내놓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기 바란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더라도 주장의 내용이 아무리 정당한들 그것이 시민과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한갓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았던가. 이런 식으로 자기 발목을 잡는 돌출행위가 계속될수록 국민들의 지지를 잃을 뿐이다. 대중운동 방식을 고민함과 더불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하기를 바란다. 선배들의 과거 운동방식만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의 선배들이 시민운동 단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지도 보고 배우라는 말이다. 한총련이 설령 합법화된다 하더라도 이처럼 자기에 대한 반성 없이 철없어 보이는 돌출행위만을 계속하는 한 그들의 진로는 어두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原
1594자 2003년 8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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