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스크린쿼터제(논술)
우리 정부의 요구로 협상을 시작한 한미투자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 한국영화의무상영제 즉, 스크린쿼터제를 만나 표류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삭발까지 감행해가며 스크린쿼터제를 지켜냈던 영화인들은 ‘문화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일전을 다짐하고 있다. 관련 당국인 문화관광부 역시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5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영화계를 보면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에 명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다시피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한 때 양적 팽창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지만 내실에 있어서도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 그 동안의 평가다. 한국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거둔 수상 실적이 이러한 평가를 각각 증거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는 4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헐리우드 영화 수입을 제한하는 인도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수준의 자국영화 점유율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라면 무조건 외면했던 시절이 있어나 싶을 정도다.
우리 영화가 이처럼 환영받는 데 스크린쿼터제가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보호막 안에서 안주할 수 없음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세계의 냉엄한 진실이기도 하다. 현행 최장 146일까지 보장돼 있는 스크린쿼터제를 그 절반인 73일까지 줄였을 때, 닥쳐올 파장과 충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는 감수해야할 운명이라면 가히 전성기라 할 만한 이 때 자신감을 갖고 부닥쳐 보는 것이 어떨까.
물론 지금의 영광이 나중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영화시장이 일단 개방돼서 우리 영화가 헤어나올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해도 협정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글을 일단 깨치게 되면 문맹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영화인들을 비롯한 스크린쿼터제 축소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이같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에 대한 불안에 근거한다.
하지만 불안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영화의 능력, 보편성을 다른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재정경제부와 행정자치부 등 한미 투자협정 관계 당국도 우리 영화의 미국 진출을 보장하고 있다. ‘결사반대’ 머리띠만 두를 일이 아니다.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찾고, 문화역량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다.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이번 투쟁이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영화발전을 위한 지원 확대를 요구한다든가, 내부의 역량 검토로 방향을 선회해야 할 것이다. 영화인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原
2003년 6월 18일 작성 1379자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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