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냐 개발이냐 (새만금 간척사업 논란을 중심으로)/논술
새만금간척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공사 백지화를 요구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삽과 곡갱이로 방조제를 파헤쳤는가 하면, 전라북도 자치단체장들은 공사완료를 주장하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환경을 개발할 것이냐 보존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은 것이지만 이것이 해묵은 논쟁으로 그칠 수 없는 것은 환경과 개발 모두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최근에 환경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논란들(북한산 관통도로 선회결정, 동강댐 백지화결정, 경인운하 재검토결정 등)에서 환경단체들이 승리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개발의 폐해를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주장은 어느 면에서는 타당하다. 간척사업으로 이미 없어진 갯벌은 우리나라 해양생태계의 보고였다. 아울러 최악의 개발재앙 사례로 손꼽히는 시화호의 경우처럼, 물막이 공사로 생긴 새만금 담수호 역시 오염물질로 뒤덮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환경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오염된 새만금의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의 몇 배를 지불해야할 상황이 닥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공사는 완료돼야 한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천문학적 비용이 아까운 이유도 있고 상대적으로 낙후한 전북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새만금이 환경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범(典範)으로 기능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우리가 봐왔던 환경단체의 논리는 환경을 자연(自然)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자연 그대로 놓아두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같은 논리는 분명 설득력이 있었고 더 나아가 도덕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환경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소극적'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자'는 논리가 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환경으로부터 얻어내려할 것이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얼음과 연탄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처럼 환경과 개발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로 인식돼 왔다. 일면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념은 같은 발상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개발을 계속해야 한다거나 환경파괴를 막는 것이 인류 생존의 길이라는 주장들은 모두가 '인간이 살기 위해'라는 전제조건이 없이는 불가능한 명제들이다. 최근에 등장한 환경친화적 개발이라는 말도 앞서 언급한 인간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출발한 개념에 다름 아니다.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은 환경을 개발의 혹은 부가품 혹은 인간생존의 도구로 보는 시각으로부터 탈피해 개발의 목적을 환경에 두는 사고방식을 지칭한다. 청계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예전의 하천을 되살리려는 쳥계천 복원사업은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의 좋은 예가 된다. 새만금 사업과 같은 초대형 사업에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의의를 뛰어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현재의 용도 논의를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은 환경과 인간의 공존, 즉 근대화 이전의로의 복고(復古)를 의미한다. 환경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우리가 현재 느끼는 위기의식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개발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이해했던 바로 그 사상을 좇아야 할 것이다.
개발의 도구인 과학기술은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환경을 파괴하는 무기도 될 수 있지만 환경을 살리는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요는 개발과 환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 또한 마찬가지다.아울러 지금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에 맞게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혜안(慧案)을 집중해야할 때다. 原
2003년 6월 20일 작성 2035자 8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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