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연합회보인 '방송기자'에 기고한 글이 발행된 것을 보니 좀 부끄럽네요. 비문도 보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다듬을 것을 ^^;;; 서울과 지역의 초초초피라미드 형태인 지금의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는 저의 주장입니다.
<전문>
<나는 지역방송 기자다, 하지만…>
“광주MBC는 서울MBC와 다르잖아요”
나는 지역방송 기자다. 신뢰받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때때로 지역 시청자들이 노력을 알아주면 그 자부심을 땔감 삼아 일하는 사람이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열린 촛불집회 취재현장을 떠올려본다. 서울의 방송기자들이 그동안의 왜곡 보도와 축소 보도로 시민들에게 조롱받고 심지어 쫓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광주의 방송기자들은 걱정이 많았다. “우리도 금남로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보도국 구성원 누구랄 것 없이 걱정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가봤더니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마이크 태그를 떼고 취재하지 않아도 됐고 취재방해를 하는 이들도 없었다. 술 취한 누군가가 취재진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것 같으면 “저기는 광주MBC 기자들이잖아요. 광주MBC는 서울MBC랑 달라요”라며 오히려 감싸주기까지 했다. 서울과 달랐던 풍경에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나는 5·18과 세월호, 4대강 사업 등의 보도에서 눈치 보거나 타협하지 않았던 광주MBC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정권이든 개의치 않고 권력 남용을 비판했고 소신을 보도했던 노력을 시민들이 인정해준 것이었다는 말이다. 1980년 5월 왜곡 보도로 시민들로부터 응징됐던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적 기억이 촛불집회의 경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기억은 실제 취재 활동에도 영향을 끼쳐서 지금도 지역방송 기자들의 자부심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방송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시청률에도 반영되는데 중앙뉴스 때보다 시청률이 높아지곤 한다. 시청자들이 ‘저 기자 혹은 저 방송사가 보도하는 뉴스는 믿을 만하다’는 신뢰를 보내주는데 기자들이 더 노력하지 않을 도리는 없는 것이다.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했다고 통신에 떴던데요”
하지만 이런 지역기자로서의 자부심은 때때로 상처를 입는다. 요새 시청자들이 흔히 말하는 ‘기레기’라는 댓글 같은 것을 접했을 때가 아니다. 같은 브랜드를 나눠서 지고 일하는 서울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가 많다. “광주죠? 통신에 보니 도심에서 멧돼지가 출몰했다는데 제작해서 올려줄 수 있나요?”라는 전화를 받을 때면 힘들게 쌓아온 자부심 같은 것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는 것 같다. 아침 취재 회의에서 기사 가치가 없어 ‘킬’시킨 아이템이 통신이나 신문에서 봤다며 걸려온 전국부발 전화 한 통으로 오후에 ‘부활’했을 때도 그렇다. 참혹한 의붓딸 살해사건을 보다 덜 자극적으로 묘사해서 기사를 올렸는데 ‘통신’과 ‘신문’ 등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기사가 출고될 때는 또 어떤가. “그림이 안 된다”, “재미가 없다”라는 이유로 전국에 전파되지 못하고 소멸했지만, 의미 있었던 로컬 리포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전국부가 처음엔 로컬처리했던 지역 리포트를 다른 ‘신문’과 ‘통신’이 다루니까 그제야 다시 제작해 달라고 요구해왔다는 웃지 못할일화는 지역방송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씁쓸한 기억이다.
'서울기자 세 명이 지역기자 삼백 명 기사 다루는 현실'
지역이 대형 사건·사고나 해외 토픽급 미담 사례가 일어나야 겨우 주목받는다거나 흉포한 사건·사고나 축제나 맛집, 날씨의 대상으로만 소비돼야 하는 곳이냐는 비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지적일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역에서도 그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통신’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돼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누구 말마따나 지역의 유지들과 유착돼 뉴스를 뭉개거나 자신이나 자사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주문제작형 리포트를 생산해내는 ‘구악기자들’이 엄존하는 현실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취하고 있는 지역뉴스 취사 선택의 과정은 개혁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의 서너 명의 기자가 지역MBC 삼백 명 가까운 기자들이 생산해내는 기사들을 모니터하고 데스킹하는 현실은 벌써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과연 이게 온당한가. 멧돼지뉴스가 정말 필요하다면 ‘신문’이나 ‘통신’만 믿을 게 아니라 지역방송기자들과 토론하고 논의해서 심층 보도할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이 바뀌고 시청자들도 달라졌는데 왜 지역뉴스에 대한 시선과 선택만큼은 예전 그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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