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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수상2(隨想二)

노 대통령의 언론소송/논술

by K기자 2013. 3. 25.

노 대통령의 언론소송/논술


노무현 대통령이 4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국민이므로 국민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부터 반론, 정정보도 등 법에 명시된 절차를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퇴임 이후로 소송을 연기할 것이라는 뜻을 비춰 지금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소송이 미칠 파장을 두고 벌일 정부와 언론 간의 시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듯하다. 

출범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줄곧 언론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기자실 중심으로 운영되던 정부부처의 취재관행을 바꾸는가 하면 최근에는 인터넷 국정신문을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이 정부가 다른 것은 제쳐두고 언론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류 언론 역시 연일 정부의 실정만을 줄곧 드러내 비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국정을 돌보지 않고 언론과 싸우는 데만 골몰한다든지, 국민통합에 앞정서야 할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를 주도한다든지 하고 말이다. 게다가 이번 소송사건을 두고는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 '대통령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다. 

주류 언론이 지적하는 바대로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싸움에 필요 이상의 힘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국정난맥과 혼란의 책임을 언론에만 떠넘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할 문제는 주류언론의 이같은 정부비판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다. 비판내용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언론도 스스로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이가 다른 이를 비판할 때는 자신도 비판대에 오를 수 있음을 전제하듯이 말이다. 자신도 비판의 대상이 됨을 인정할 때 비판하는 이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우리 나라 주류 언론은 그동안 비판자의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스스로 다른 세력에 의해 제대로 비판받지 못했다. 군사독재시절에는 정부권력의 통제를 받아 재갈물림을 당했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정부에 재갈을 물리는 등 극단적 모습을 보여왔을 뿐이다. 요컨대 제 머리 못 깎는 중처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비판다운 비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언론 역시 외부로부터 비판에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제 언론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예전처럼 정부가 언론인 뒷조사를 한다든가 기사검열을 하는 식으로 부당하고 비겁한 방법을 쓰는 것도 아니다. 

언론사들은 정부가 언론을 탄압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국민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된고 있음은 언론보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언론보고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가 언론을 견제하는 이같은 긴장관계가 장려돼야 한다는 말이다. 권언유착보다 권언긴장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의 이번 소송 역시 권언긴장관계하에서 언론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