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권하는 사회/논술
최근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폭력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학생을 체벌한 초등학교 교사가 폭력혐의로 구속됐는가 하면, 상급자의 성폭행을 견디다 못한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체벌을 당연시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교사가 구속됐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큰 사건이다. 군내 대 성폭력 사건 역시 성폭력이 남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 여겨왔던 우리의 의식에 큰 충격을 던져 주고도 남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통념을 뛰어 넘었다는 사실만 같을 뿐, 이 두 종류의 사건들은 서로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공통점은 가해자가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발생한 사건들이다. 실상 폭력은 어느 관계,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처럼 위계질서가 분명한 관계에서 나오는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위계질서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유교문화에서 그 원인을 지적해내곤 한다. 수직, 상하 관계를 장려하는 유교적 전통이 수평, 평등관계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가치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지만 그 같은 분석은 수직, 상하관계와 폭력이 논리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유교문화의 전통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데 있다. 후학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이 여겨서는 안된다고 한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의 문민성, 비폭력성을 잘 함축하는 경구다. 사회 곳곳에 암처럼 배어 있는 폭력문화는 오히려 일제가 남긴 잔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조선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식의 사상을 주입한 일제와 그 왜곡된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해방 이후 군사독재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져, 권위주의를 앞세운 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벌이는 폭력보다 위계질서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이 무서운 까닭은 폭력이 밖으로 드러나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보복이 두려운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위계질서를 깨뜨리고, 하극상을 범했다는 식의 사회적 비난이 피해자로 하여금 그것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위의 시선이 무서운 탓에 폭력은 더욱 내밀한 곳에서 이뤄지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는 더욱 강화돼 폭력을 양산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이번 폭력사건에서 그나마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희망은 폭력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내에서 성폭력을 당한 병사가 죽음을 통해서나마 폭력의 실상을 외부에 알려냄으로써 폭력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침묵을 통해 암묵적으로 폭력을 권하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직도 완전히 너그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학생이 선생님을 고발할 수 있는가’ 식의 시선이 남아 있는 한 폭력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은 멀다. 原 1570자
2003년 7월 1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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