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서약제 폐지 잘했다/논술
어제 법무부가 준법서약제를 다음달 중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상범, 공안사범들을 가석방할 때 받아온 준법서약서는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위헌시비, 인권침해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포로와 간첩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의 사상전향제에 비해 요구조건과 강제정도가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준법서약제는 그동안 인권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단체와 우익인사들은 준법서약제 폐지를 우려하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준법서약제는 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요, 보루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도 다수의 사상범이 존재하고 북한당국이 그들을 탄압하고 징계하는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데도 우리만 사상범이나 확신범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만의 특수한 남북 대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고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법서약제를 폐지한 것은 잘한 일이다. 사상과 양심의 영역을 법이 너무 오랫동안 제약해왔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준법서약서를 작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후 확인도 불가능해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 헌법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부분의 나라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요, 자신감의 근거다. 체제에 반대하는 행위와 불법행동은 그것이 보일 때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법과 제도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상상의 영역까지 침범할 때 이는 인권침해 시비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사상의 자유를 모토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와의 모순됨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이번 조치의 또다른 성과는 남북문제를 이념의 시각이 아닌 인권의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날의 남북대립과 민족의 비극이 갈등을 이념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에 반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남북화해 움직임은 이념이 아닌 인권의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준법서약제 폐지를 시작으로 하는 인권의식이 북한 주민과 사상범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그 외연을 넓혀가야함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겠다. 原 2003년 7월 9일 120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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