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방향모색 원탁토론회 발언이다. 과연 내가 저 자리에 낄만한 자격이 있나 두려워하며 쓴 토론문이다. 또 하나 걱정은 내가 겪은 미시적 에피소드들 한 두개를 가지고 침소봉대의 주장을 편 것은 아니었을지였는데 다행히 참석자분들께서 잘 들어주셨다. 광주드림의 강경남 기자가 잘 정리해주셨다.
다음은 원문. 링크는 발췌 기사.
<광주는 ‘민주주의의 소도(蘇塗)’로 자리하고 있는가>
소도(蘇塗)는 고조선의 성역이었다. ‘소도’는 신성불가침 구역이어서 죄인이 이 곳으로 도망가면 잡을 수 없었다. 한때 서울 명동성당이 그랬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혹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갈 곳 없는 이들이 이 곳으로 숨어들면 제 아무리 잔인한 군사정권이라 해도 일단 주춤하는 모양새는 취했다. 광주시민들 역시 1980년대와 1990년대 5.18 진상규명과 전두환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는 싸움을 벌일 때 서울 명동성당을 소도로 삼았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라는 도시의 이름이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들의 ‘정신적 소도’로 기능하던 때가 있었다. 계엄군에 맞서 죽어간 전사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불의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의기(義氣)를 떠올리며 각자가 처한 싸움의 전쟁터에서 민주시민들은 광주를 ‘민주주의의 소도’로 생각하면서 싸워왔다. 실제로 그 싸움은 1987년 6월 항쟁을 낳았고 30년을 거치면서 2017년의 촛불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등대로 여겨지고 있고 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의 여러 독재정권 아래서 탄압받는 민중들이 광주를 그런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홍콩시민들 30%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는 올해 여름의 송환법 철폐시위에서 홍콩시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든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캄보디아인들 수천명이 광주시청 앞에 운집해 자국의 민주화를 요구했다든지 하는 장면을 보면 광주가 한국을 넘어선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대’로도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지금 광주를 과연 ‘민주주의의 소도’, ‘탄압받는 이들의 안식처’라 망설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5.18을 취재하면서 맞닥뜨렸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자신이 없다. 지난 2014년 망월동 시립묘지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를 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망월동 안장을 두고 마찰이 잇따랐다. 부당해고에 항의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주노총 소속 전주시내버스 기사 故 진기승씨의 안장을 두고 5월단체가 반대하며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망월동에서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2014년 1월 1일 서울역에서 박근혜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故 이남종씨를 안장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5월단체는 5.18이나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는 인사들을 다 받아줄 수 없다는 ‘안장불가’ 입장이 강경했다.
하지만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어디 오월정신이 5.18관련자로만 국한될 것인가’의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거나 부도덕한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른 이들의 영혼이 광주 망월동에서 함께 쉬자는 데 먼저 묻힌 오월영령들이 과연 반대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 때는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아직 5.18 진상규명을 완수하지 못했고 학살자 처벌도 온전히 하지 못하는 등 당사자들의 한을 풀지 못했는데 광주를 ‘민주주의의 소도’로 만들자는 얘기는 시기상조의 고민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5.18 40주년, 사람 나이로 치면 장년을 맞는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광주의 품을 넓히고 넓혀서 광주를 ‘민주주의의 등대’, ‘민주주의의 발신기지’, ‘탄압받는 이들을 위한 안식처’ 즉 소도(蘇塗)로 만드는 일이 과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 이후에 나중에 달성해야 할 과제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문제는 문제대로 진행시키되 광주를 보다 광주정신의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그것대로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단순히 망월동 안장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권력에 맞서다, 불의에 항거하다 싸운 이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있는 곳. 지치면 들렀다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광주는 과연 품이 넓은가, 포용력이 있는가의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 이슈였던 홍콩시민들의 투쟁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진 그 투쟁의 현장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어깨를 겯겠다는 광주시민이나 단체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송환법’의 주제가 정치적이고 예민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역사회에서 논의조차 없었던 건 심히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연상시켰던 홍콩경찰들의 폭력진압과 7백만 인구 중 3백만이 나섰다는 홍콩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보고도 연대 성명서 하나 낼 생각을 하지 못했던 협량함의 도시가 어떻게 민주인권평화도시라는 수식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광주인권상', '5.18언론상', '5.18문학상'처럼 세상 여기저기서 각자의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을 광주와 5.18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5.18 전국화’나 ‘5.18 세계화’ 기치를 내걸고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아시아나 세계 각국에 알리는 사업을 하는 것은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중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치고 힘든 이들이 광주에 와서 안식할 수 있도록 광주의 품을 넓히고, 광주 안의 민주주의를 더 뛰어나게 우리 안의 일상의 민주주의를 다지는 일이다.
그것은 ‘00화’를 선언한다고 해서 달성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인권탄압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도’와 같은 곳, 또 위기에 처한 이들이 손을 뻗었을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을 넘어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많아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광주를 명실상부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요, 광주정신에 부끄럽지 않도록 시민들의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내면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일, 내년에 불혹이 되는 5.18 40주년을 앞두고 절실한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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