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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이탈리아

16일째 (2003.5.14.수)

by K기자 2013. 3. 25.

2003 May 14th Wed. 여행 16일째(시에나->소렌토)



1. 나이젤과 함께 아시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다. 이 고집센 늙은이와 함께 다니는 일은 피곤하기 그지 없다. 뭣이 좋다고 나랑 동행을 고집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여러가지 면에서 겸손하고 유머가 넘치는 미국인 톰과 비교가 된다.

<아시시에서 만난 견학 나선 이탈리아 학생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을 아시시에서>



2. 나이젤과 헤어지고 로마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쏘렌토로 가야할 지 아말피로 가야할 지 카프리로 가야할 지 아니면 나폴리로 가야할 지 아직도 고민이 된다. 나이젤이 왜 그렇게 나랑 같이 있고 싶어했는 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 이 해방감.

<아시시에서 나이젤과 헤어지다>



3. Orte 역에서 일단의 한국인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것을 보다. 플로렌스의 아웃렛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들으니 역시 나를 포함한 한국인, 일본인은 어쩔 수 없는 종족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까짓 명품이 무슨 대수라고... Gucci 가방을 메고 다니려니 여기 이탈리아인들조차도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기분이 과히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잃어버리면 끝장이니 조심하자.

4. 쿠셋(couchsset) 칸에서 다니엘라라는 이름의 이탈리아인과 만나 얘기하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friendly하게 바뀌는 폼이 영락없는 이탈리아인이다. 세계를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나라라고 자기네 나라를 치켜세워줬더니 내가 많은 것을 깊이 알고 있다고 역시 칭찬해 준다. ^.^ 치아치아오(Cia-cioa)라고 정겹게 인사를 하고 그녀는 기차에서 내렸다.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그녀와 같이 친절하고 상냥하고 인간적이다.

5. 기차가 삼십분이나 연착될 것 같다. 사람들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모두들 조심, 또 조심하라고 이르고 있다. 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떠난 기차 안에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이겠는가.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하는 수밖에.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이번 여행 성공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6. 다니엘라에게도 그랬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은 많지만 생활을 하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허술한 검표 시스템이 그렇고, 기차 여행 중에 간간히 보이는 산불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민둥산이 그렇다. 반면에 독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차가워 보이는 그들의 국민성은 꼼꼼함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한 그들의 국민성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게한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오늘날만큼 부흥시킬 수 있었던 힘이 됐을 것이다. 세계를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나라 이탈리아가 오늘날엔 왜 이토록 힘이 없는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들의 국민성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는다. 요는 철저함이다. 이들의 선조인 고대 로마인들의 국민성은 외려 오늘날 독일인의 그것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아시시에서>



7.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라는 나폴리는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범죄로 악명이 높다. 나폴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는 나는 적진의 소굴로 뛰어드는 장수와 같은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8. 과연 남부 이탈리아는 북부랑 그 분위기가 다르다. 영어 사용빈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은 북부 이탈리아인에 비해 보다 시끄럽고 입은 차림새도 남루하다. 나폴리로 오는 기차에서 만난, V***, D*** 도 마찬가지. 자리에 앉지 않고 기차칸을 서성이는 그들을 보며 혹시 강도가 아닐까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내게 나폴리는 위험하니 조심하라며 칠컴베수비오(circumvesuvio)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줬던 그들은 좋은 남부인들이었다.

9. 역에서 내리자마자 칠컴베수비노기차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산 다음 나는듯이 탑승구로 달려갔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착해 보여 안심이다. 지금은 칠컴베수비오를 타고 쏘렌토(sorrento)로 향하는 중. 여기를 떠나 로마로 가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아니 한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10. 여행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매력포인트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멋진 경치, 역사적 유적, 친절한 사람들, 잘 발달된 교통 체계?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요건들을 갖추고 있더라도 치안이 좋지 않으면 관광지로서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정감, 신뢰감을 주는 여행지는 다른 명소보다도 훨씬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과히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11. 소렌토 유스호스텔에 무사히 입성하다. 두 쌍의 커플과 함께 한 방을 쓰게 됐다. Russel 과 Nathan. 그들은 과히 나쁜 사람들같지 않아 보여 안심이 된다. 무사히 도착해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게 돼서 다행이다. 내일의 여행이 기대된다. Cia-ci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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