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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방송과 기사

법과 원칙/작문

by K기자 2013. 3. 25.

법과 원칙/작문

친노(親勞)정권이라 비판받던 노무현 정부가 최근 철도노조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해 노조원들을 강제해산시켰다. 공권력 투입을 두고 노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잘 지킨 선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최근의 줄파업에 짜증이 나고, 더구나 이번처럼 명분없는 철도노조파업에 화가 나면서도 노대통령이 사용한 '법과 원칙'이라는 단어를 보니 거부감부터 생긴다. 대화할 힘이 떨어진 정부와 사용자측이 휘두르게 된 물리적 강제력을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덮으려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마저 든다.

이러한 거부감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시국시위나 민주화요구를 탄압하는 데 '법과 원칙'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했던 데 그 일차적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법과 권력이 분리되지 않았던 우리의 불행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정치의 요체가 삼권분립이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교육받아왔지만 그러한 교과서적 진실과 체험적 진실이 너무도 상반되는 것임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 권력의 시녀라는 검찰을 믿지 못하기에 검사에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기까지 하면서 수사의 공정성, 법의 엄정함을 지켜내려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권력의 시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에게 '법은 강자의 편에 선다'는 정도의 인식은 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 같다. 인간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애초의 법의 취지라지만 그것의 해석과 집행은 늘 강자의 논리와 그 궤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거부감은 곧 그것의 권위를 지켜주는 법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짐은 당연한 논리적, 감정적 귀결이다. 

근대라는 시대적 의의는 다른 것보다도 권력으로부터 법을 명목상으로나마 해방시켰다는 점에 있다. 요컨대 권력은 교체가 미덕이고 그것은 곧 권력견제의 증거가 되지만 법은 권력의 교체와 무관하게 일관성을 보여야했다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명목상의 진실이 일상의 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 전근대마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의 힘은 단순한 물리적 강제력에 있지 않다. 그것의 진정한 권위는 그 법이 품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동의하고 지지할 때 우러나온다. 단순한 강제력은 물리적 폭력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동의와 지지는 화학적, 정신적 감동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법의 권위를 마음속으로부터 지지하는 사회, 노조의 불법 행위에 '법과 원칙'을 엄정히 지켜 대응하겠다는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2003년 7월 1일 작성 55분 126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