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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방송과 기사

자살유감/작문

by K기자 2013. 3. 25.

자살유감/작문

자살이 유행이다. 상급자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한 병사가 자살하고, 카드빚에 허덕이던 아내가 자식들과 함께 자살하고, 대북 사업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대기업 회장이 자살했다. 그동안 별 문제없던 우리 사회가 최근 들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인가? 최근 유행하는 자살을 두고 자주 인용되는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자살자수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하루 평균 36명, 한 시간에 1.5명 꼴로 자살자가 생긴다는 통계수치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자살이 이뤄지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동시에 이런 통계는 1년 동안의 평균치이기에 자살이 비단 요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려준다. 다만 요즈음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자살 사고들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기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 문제를 논의하기란 쉽지 않다. 자살의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인간 사회의 암묵적 전통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시절, 여인이나 신하가 정조,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미화하고 오히려 장려하기까지 했던 우리의 전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자신의 결백을 알리고 자기의 힘든 사정을 호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 나아가 자살이 실존의 문제와 함께 논의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자기 삶을 잘 꾸리고 오랫동안 사는 것이 인간의 존엄한 권리인 것처럼, 자기 의사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끊을 ‘죽을 권리’ 또한 인정돼야한다는 주장 앞에서 자살을 비판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내 생명은 나의 것이므로 목숨을 끊을 권리 또한 내게 있다는 생명의 자기결정권은 쉽게 부정하기 힘든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자기의 생명이 꼭 자기만의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세상과 절연하며 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사람이 자살했을 때 그로 인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의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비난하는 사형수라 할지라도 그가 사형당할 때 그의 부모는 절망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죽음의 고통, 그 아득함과 막막함은 이미 죽는 당사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 명의 사람을 지칭할 때도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동의하다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한 인간의 자살이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 외에도 자제돼야할 이유는 더 있다. 그것은 자살이 다른 자살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살 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매우 신중하면서도 동정적이다. 이는 생계문제로 인한 자살이 늘고 있으므로 사회안전망을 보다 확충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주장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자살이 사회적 관심을 끌고 뭇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삼으로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하는 다른 이들까지 자살을 하고 싶게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당장의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심지어는 사회적인 동정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살이 이들 빈민층에게도 매혹적으로 다가가게 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회장이 자살한 후,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힘들어질 것을 비관한 실향민이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는 자살이 또 다른 자살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고 나서 소설 속 주인공을 따라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는 자료 또한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이렇게 보면 자살이 비단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역시 자살한 사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살을 비판하자니 불경이 되고, 자살을 동정하자니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자살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했다지만 이 같은 자살연구가 우리의 모순적 상황을 해결해줄 것 같지는 않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 역시 유행처럼 번져 있는 자살을 줄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살심리를 연구하는 것도 좋고 사회 안전망을 보다 촘촘하게 짜는 것도 좋다. 그러나 결국 자살은 개인의 결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각 개인에게 호소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자기 몸은 단순히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자살을 막는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原 2327자 


2003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