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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관련해 재판을 받으며...

by K기자 2012. 1. 15.
오늘(13일) 서울 남부지법에 재판을 받으러 왔다. 얼마전 출범한 조중동매 종편과 연합보도채널 등에게 숨을 불어넣어준 2009년 미디어법 국회 날치기 통과 때 저지른 범법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서다

당시 언론노조 조합원 신분으로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우리들은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회로 갔다

종편 출범의 모법이 되는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되는 현장은 시민으로서는 물론 언론노조 조합원으로서 또 기자로서도 꼭 직접 보고 싶은 광경이기도 했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국회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2009년 7월 22일 오후 미디어법 통과를 선언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광주MBC 조합원들은 정문을 막아선 경찰에 의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다 들어가는데 왜 우리를 막느냐고 항의했고 바로 옆 야트막한 국회 담장을 발견하곤 그 곳을 통해 국회 경내로 들어갔다. 우리는 이내 경찰에 연행됐고 서초서 유치장에서 만 이틀을 보낸 뒤 지금껏 햇수로 4년째 재판을 받으러 불려 다니고 있다.




 <당시엔 국회 옆 인도에 보도블럭 공사 때문에 저렇게 담 옆에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사 인부들이 작업상의 편의 때문에 계단으로 만들어 놓고 넘어다니고 했을 것으로 추정>
 

< 담장을 넘은 뒤 국회 경내 잔디밭을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의 뒷모습. 천천히 걸어가고 있고 그 앞에 전경들이 우루루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광주MBC 조합원 7명이 연행된 뒤, 남은 조합원들이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
 

 <남은 사람들이 전경 버스에 연행된 조합원들 보고 안심시키는 모습.>


<2009년 7월 22일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광주MBC 7명, 서울MBC 5명, 춘천MBC 6명의 조합원 등 모두 18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오늘(13일)은 1심 선고가 있기 전 마지막 변론을 하는 날이었다. 판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하라기에 난 이렇게 말했다. "그 때 나는 불법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곳은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의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뭘 잘못하고 있었다는 의식이 있었다면 나는 달려오는 전경들을 피해 달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국회 경내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엔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시민인 나를 경찰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발동시켰다는 경호권도 국회 본관에 한정됐을 뿐이어서 본관이 아닌 국회 경내(잔디밭을)를 출입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집주인이 내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그걸 막는 게 이상한 것이다. 오히려 근거 없이 주권자의 출입을 막은 경찰이 나의 기본권을 유린한 것이다"

판사는 별 말이 없었다. 1심 선고는 2월로 잡혔다.

미디어법이 날치기된 이후 몇달 뒤, 헌법재판소는 민주당 의원들이 낸 권한쟁의심판과 관련해 미디어법의 국회처리과정에서의 불법은 인정하지만 미디어법 자체의 효력은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 재투표, 대리투표, 법심의절차 누락 등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불법행위는 확인했지만 법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당시 판결에 대해 네티즌들은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한다', '회삿돈은 훔쳤지만 돈의 소유권은 인정한다' 같은 패러디(http://bit.ly/oCjdxw)를 쏟아내며 조롱했다.

불법으로 점철된 미디어법의 통과로 지난달 조중동매 종편 4개와 연합뉴스보도채널 1개가 탄생했고, 그들로 인해 파생된 방송광고시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정부 여당의 목표는 조중동 종편의 생계를 위해 KBS 수신료도 인상시켜줄 모양이다. 아마 여론의 왜곡과 미디어생태계 파괴 등 조중동 종편이 쏟아낼 폐해는 앞으로도 그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어마어마할 것이다. 불법의 후유증이 이렇게 심각하건만, 미디어법 법안 날치기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신 국회의원들 나으리들은 어떤 책임을 졌고 무슨 처벌을 받았나? 나는 이들이 미디어법 불법 날치기 처리와 관련해 책임을 졌다는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다음달 선고 공판에서 나는 아마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개의치 않는다. 어쩌면 나중에는 훈장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당시 국회 담장을 뛰어넘어가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었던 방송의 공공성과 언론의 역능이 형편없이 무너져 내려 이제 더 무너질 것도 없이 돼버린 현실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법원을 나서기 하루 전, 대법원에서 정연주 KBS 사장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최대의 공영방송이자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KBS의 9시 뉴스에서는 이 소식이 단 한 줄도 방송되지 않았다. 그동안 KBS가 틈만 나면 9시 뉴스에 보도했던 수신료 인상이 정당하다는 취지 보도의 1/100만큼만 보도됐다면 나를 KBS를 우러러봤을 것이다. MBC는 어떤가? 서울MBC는 미디어렙법이 자사 이익과 배치된다며 미디어렙법 입법을 추진하는 언론노조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며 이를 무산시키기 위한 보도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이 뿐인가? KBS와 MBC는 수신료 인상과 미디어렙법 무산 등 자신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15일로 예정된 민주당 대표선거개표 중계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강짜를 부리고 있는 상태다.

2009년 미디어법 대투쟁 때, 땡볕 아래서 고생한 것이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게 아니었을진대 법원을 나서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들락거려야할 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위와 같은 언론의 썩을대로 썩은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