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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와 KBS의 차이

by K기자 2012. 1. 16.
어제 KBS가 뉴스 50년을 자축하면서, 신뢰도 공정성 1위를 홍보했다. 그러면서 기자정신을 여러번 강조했는데 그걸 보는 내 얼굴이 다 후끈거렸다. 경쟁사 기자가 그런 보도를 보면 보통 부러워야 정상이겠지만 그런데 나는 부끄러웠다. 특히 BBC 보도와 관련된 리포트를 보면서는 손발이 오글거렸다. 자신들과 BBC를 동급으로 여긴다는 뜻일까? 아니면 역량은 비슷한데 KBS는 재원만 BBC만큼 있으면 그 정도로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여러분들이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 http://news.kbs.co.kr/tvnews/news9/2012/01/15/2420100.html 

그 보도를 보면서 생각났던 것은 대학 선배이자 KBS 기자였던 고(  ) 조종옥 선배의 블로그였다. 조 선배 아니, 조기자는 블로그에서 KBS가 BBC를 따라갈 수 없었던 이유를 정확히 적어놓고 있었다. BBC와 KBS의 차이, 과연 무엇일까?


BBC와 NHK KBS뉴스


세계 공영방송의 귀감이자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영국의 BBC와 일본 NHK.


재원의 대부분 (사실상 전액)을 수신료에 의존하고 있고, 정부로부터 상당히 독립된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NHK가 BBC를 모델로 출범했으니 흡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방송사는 뉴스와 사실프로그램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위상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BBC가 '적극적 정치 개입형'이라면 NHK는 '소극적 정치 회피형'이라고 할 수 있다. 


   NHK는 예산 결산이 중.참의원 만장일치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즉 단 한명의 의원이나 군소정당이 반대해도 NHK 예산은 편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회계년도 개시 서너달 전쯤되면 NHK회장은 국회에서 의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읍소하며 예산안 지지를 구걸하는게 일과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NHK가, NHK보도국이 온전히 정치비판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다룰 수나 있겠는가? 오히려 정치권 '홍보뉴스'가 범람하고, 특정 정책에 대해서는 모든 정당의 의견을 기계적으로 나열해줄 수 밖에 없는 실정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NHK는 실크로드 같은 대형 자연, 역사다큐에 더 치중해왔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적어도 뉴스와 팩츄얼 프로그램에서는 NHK를 공영방송의 모델과 지향점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반면 BBC는 국왕의 칙허장에 의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있는 상황인데다, BBC내부의 여러 힘의 요인들 (경영자, 노조, 각 정파 지지자)의 역학관계가 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 정치적 편향을 차단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BBC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현안도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나름의 아젠다세팅 기능을 발휘하곤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논쟁과 사변을 중요시 하는 영국 풍토에서, 또 더 타임즈와 가디언 등 보혁 양진영의 정파지를 '자임'하는 영국적 언론환경 속에서, BBC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국민들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더 타임즈 또는 더 가디언이 양극단에서 서로 다른 견해와 의견을 내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신문 자체가 정파지에서 출발했기에, 지면을 통한 opinion의 게재, 더 나아가 총선의 endercement 사설까지, 당연시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들 다른 얘기, 다른 의견들을 얘기하는데, 실체적 진실은 뭐지?"하는 의문을 BBC뉴스를 통해서 풀어나간다.


   실제로, 길리건 기자의 이라크전 정보조작 의혹보도에서 시작돼, 캘리박사의 자살로 이어졌던, 이른바 허튼 보고서 파동때에도, 고등법원은 BBC가 왜곡보도를 했고, 노동당 정부는 아무잘못이 없다는, 이른바 10:0의 판결을 내렸지만, 가디언 등의 설문조사 결과 영국 국민의 90%는 BBC보도를 신뢰하고 허튼 보고서나 노동당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나왔을 정도였다.


    BBC를 공영방송의 귀감과 모델로 삼는 것은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BBC도 최근,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언론환경의 급격한 변화, 시장경쟁의 격화 등으로 공영방송의 위기 징후가 그 어느때보다 강도높게  감지되고 있고, 특히 영국에서는 정치권과의 마찰로,  BBC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언론정책의 총서인 얼스타인 보고서는, BBC를 네쪽으로 나눈다거나, 수신료를 폐지한다, 또 맨체스터로 본사를 옮기고 고비용 프로그램을 폐지한다 등등 극단적인 처방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70년 역사의 공영방송  BBC는 어느 한 시기도 평온할 때가 없었지만, 시기시기별 위기대응 전략을 잘 세워 생존해왔고,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BBC의 위기대응 전략이 영국과 BBC에만 그치지 않고, BBC를 귀감으로 삼고있는 전세계 공영방송, 또는 지상파 방송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친다는 점이다.


  시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BBC가 이적, 간첩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회의 조사를 요구합니다"


  1984년, 포클랜드 전쟁이 한창일 때, 대처 당시 영국 수상이 의회 정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의 교전 소식을 전하는 BBC뉴스가, 영국군을 '아군' 또는 '우리군'으로 표기하지 않고 시종일관 '영국군'이라고 표현하고, 아르헨티나군을 '적군'이 아닌 '아르헨티나'군으로 표기하는 등, 방관자적인, 어떻게보면 아르헨티나입장에 서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이라크 침공때도 마찬가지로, BBC는 철저하게 '영미 연합군' 혹은 '영국군'이라고 표현할 뿐, '우리 군'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자국의 안위가 달린 전쟁에서도,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 서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2차대전 등 영국본토에서 전쟁이 이뤄지고, '정말로' 국민의 안위가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BBC도 다른 여느나라처럼 '선무방송'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야말로 최대한, 가능하면, 되도록이면 중립적이고자 하는 의지에는 높은 점수를 줘야만하지 않을까?  

2007/03/16 11:29  



-故 KBS 조종옥 기자 블로그에서   http://blog.naver.com/augyjoe/30015525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