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니까 황형철 시인이 선물해준 손택수의 시 한편.
-손택수 「먼 곳이 있는 사람」
걷는 사람은 먼 곳이 있는 사람
잃어버린 먼 곳을 다시 찾아낸 사람
걷는 것도 끊는 거니까
차를 끊고 돈을 끊고
이런저런 습관을 끊어보는 거니까
묵언도 단식도 없이 마침내
수행에 드는 사람
걷는 사람은 그리하여 길을 묻던 기억을 회복하는 사람
길을 찾는 핑계로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
모처럼 큰맘 먹고 찾아가던 경포호가
언제든 갈 수 있는 집 근처
호수공원이 되어버렸을 때를 무던히
가슴 아파 하는 사람
올림픽 덕분에 케이티엑스 덕분에
더 멀어지고 만 동해를 그리워하는 사람
강릉에서 올라온 벗과 통음을 하며
밤을 새우던 일도 옛일이 돼버리고 말았으니
올라오면 내려가기 바쁜
자꾸만 연락 두절이 되어가는
영 너머 먼 데를 잃고 더 쓸쓸해져버린 사람
나는 가야겠네 걷는 사람으로
먼 곳을 먼 곳으로 있게 하는 사람에게로
먼 곳이 있어 아득해진 사람에게로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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