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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도서

존재는 위협이고 정체성은 방어이다-장정일

by K기자 2013. 3. 26.

존재는 위협이고 정체성은 방어이다-장정일 , <독서일기>






"나는 인종차별이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처럼 내가 인종차별을 마음놓고 비난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나쁜 것이락 단죄하고자 할 때마다, 오늘의 인류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교육 그 자체를 나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이상스러운 혼돈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빼놓고서는 어떤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나의 부모, 가족, 친지에 대해 가장 먼저 인지받도록 훈련받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인지하고 보존할 더 크고 굳건한 정체성의 구성물에 의해 둘러싸이고, 그것들로부터 되풀이 교육받은 끝에 '나'는 '내-고장', '내-언어', '내-문화'와 같이 추상적이지만 가시적 형태 이상의 엄한 규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며,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만 안정을 얻게 된다.

 

희랍의 한 철인은 '너' 즉 '나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 말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가장 작은 단위에서 높은 단위로 점차 높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 '나'를 아는 정도에는 각자의 한계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나'를 '나라'라는 좀더 확대된 동일성 속에서 파악하기도 한다. 지역 감정의 화신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범상한 인간은 평범한 사람이 '내-가족', '내-고장', '내-나라' 수준에서 마감하느느'나'의 정체성을 '인류'라는 보편에까지 확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자만이 철인의 명령을 완수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 어려워서 내가 '인류'가 되는 일에 비하자면, 낙타가 바늘 속을 통과하는 일은 너무나 쉬워서 부자들은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어떤 단위의 정체성은 가치가 귀중해지기도 또 어떤 단위의 정체성은 그 동질적 효과가 의문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역(고장)은 가족이나 국가와 같이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형태 속에 양분되어 그 중요성이 미미해지면서, '가족'과 '나라' 사이의 틈을 '학교'가 대신하고 있다. 이런 실례는 우리가 정체성을 구하는 대상이 어떤 계기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해주며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서광을 비추어 주는 듯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발전과 함께 사라져버린 '내-고장'에 대한 애향심이 프로야구 같은 뜨거운 관심사에 의해 새로이 부활하는 것을 보면,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 가를 알 수 있게 되고 인종문제에 대한 서광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만다. '가족'과 '나라'사이에 상하향 흡수되어 버린 '내-고장'에 대한 애향심이 프로야구라는 운동경기와 함께 부활한 사실에서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정체성이라는 것이 경쟁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을, 더 엄밀히 말해서는 타자라는 존재에 의해서만 '나'의 정체성이 수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화시켜 말해서 시베리아처럼 드넓은 고장에 한 가족밖에 없고, 한 나라에 한 지역밖에 없으며 또 이 지구상에 한 국가밖에 없다면 '나'라는 정체성이 눈뜰리 없다. '내-가족', '내-고장', '내-나라'는 다른 '내-가족', 다른 '내-고장', 다른 '내-나라'의 존재 없이는 고집될 필요가 없다. 존재는 위협이고 정체성은 방어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