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
1.지은이: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출판사: 강
3.초판 발행: 2006년 5월 25일
(55p.) "저널리즘 용어 중에 '가차(gotcha) 저널리즘'이란 게 있다. '가차(gotcha)'는 'I got you'의 준말로 우리말로 '너 잘 걸렸다' '딱 걸렸어' 정도의 어감이다. '가차 저널리즘'은 정치인이나 저명인사의 사소한 말실수나 당황해하는 행동 등을 흥미 위주로 사안의 맥락과 관계없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제리 랍딜은 '가차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언론의 암세포 같은 존재'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가차 저널리즘이 암세포인 이유는 사회적으로 위임받은 권리를 자신의 먹이를 추구하는 맹수의 발톱으로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62p.) "유명 작가들의 자살은 종종 작품세계와 접합돼서 하나의 문학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무명의 자살이 사회에서 처리되는 방식은 훨씬 기계적이다. 대개 뉴스에서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왜?"이고 그다음 궁금한 점은 '어떻게?'이다. 뉴스는 여기에 화답해서 '자살동기'와 '현장의 상태'를 필수적인 팩트로 전한다. 그런데 '어떻게'에 해당하는 자살 방법은 현장에 물증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단순 전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살 동기는 한 개인의 생애 전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명쾌한 규정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자살을 몇 개의 항목으로 범주화해서 설명하는 오랜 습관 속에 살고 있다. 생활고 비관, 신병 비관, 가정불화, 실연, 비사교적 성격,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등. 군대는 가정불화, 실연, 내성적 성격이란 불과 세 개의 범주만으로 모든 자살을 설명하는 기막힌 효율을 과시한다. 한 개인이 삶을 마감한 이유를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개인이 삶을 포기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자살 동기란 범주는 사실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등을 돌리기 위한 방패이다. 목숨을 끊어버린 사람에 대한 지독한 두가지 궁금증-'내 삶이 행여 저 죽음에 개입했을까? 라는 막연한 죄의식과 '저렇게 버릴 수도 있는 목숨을 나는 쓸데없이 꼭꼭 부둥켜안고 있는 것은 아닌?"라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재빨리 없애지구 위한 것. 한마디로 자살 동기는 죽은 자의 사연을 설명하는 범주가 아니라 산 자에게 희망의 똥침을 놓기 위한 범주이다."
(217p.) "애초에 어른 세계의 규범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반성도 하지 않았다. 반성은 보편적인 가치에 개인적 경험을 대조해서 보편적 성장을 지향하는 행위이다. 디카프리오가 연방수사국의 위조수표 전문요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는 제도에 대한 고해가 없다. 그건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무례하게 정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해하지 않는 인간 둘을 기억한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고도 신부의 회개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생애 처음으로 고독한 어머니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회개를 대신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평생 소년의 호기심과 수컷의 본능으로 살았지만, 죽을 때까지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 직전 창가로 달려가 자신을 텍스트로 읽어준 단 한 사람을 추억하는 것으로 기도를 대신했다. 이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천국이 없어도 사람 하나만 있으면 평생 살 사람들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나 잡아봐라'는 연애영화가 아닌가."
(249p.)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기업화된 언론 조직 안에서는 진실 보도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 까닭은, 첫번째는 언론 자본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폭로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는 날마다 안정되게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서 관공서 중심의 출입처를 주요 취재원으로 삼는 시스템에서는 진실의 폭로에 소요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53p.) "한국의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는 가해자에 대한 폭로보다 피해자에 대한 휴머니즘적 접근을 선호한다. 이건 한국인이 무어보다 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공격이 훨씬 명징한 논리적 근거를 필요로 하고, 그러려면 취재가 몇 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적 실천의 효과는 가해자에 대한 공격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무어적 수사학을 구사하는 공격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이 진정으로 많이 나와야 할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아닌가 싶다."
(281p.) "진실을 말하는 게 꿈이라면 꿈꾸는 자세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말하는 자세, 아니 진실이라고 말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말에 관한 생각의 조각들을조립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단순하고 치명적인 사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되고, 자신의 체중을 실어서 주체를 드러내며 말해야 하고, 그러한 노래조차 언제나 욕망의 개입으로 거짓으로 흐를 수 있다는 성찰적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284p.) "전문직업인주의는 세 개의 모순 관계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한다. 첫째 언론사주는 기자가 시민사회로부터 얻는 인정과 같은 상징 자본의 축적이 기업의 이윤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믿어야 한다. 이 확신의 여부는 편집권 독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둘째 기자는 자신의 주체가 시민사회의 대리인으로 유지될 때 자신의 직업인적 영향력이 확대된다고 믿어야 한다. 즉 자신이 누리는 매체 권력의 지원 세력이 사주가 아닌 시민사회라는 점을 확신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기자를 지사나 열사가 아닌 직업인으로 인정하고 안정적인 직업적 활동이 궁극적으로 시민사회를 위한 언론활동의 물적 토대가 되리란 것을 믿어야 한다."
(286p.) "기자에 대한 부르디외의 견해는 이상길의 [피에르 부르디외:저널리즘의 장과 민주주의](세계의 미디어비평, 한국언론재단 발간, 2005)에 소개된 내용을 참조했다. 저널리즘 장과 문화생산자로서의 언론인의 속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을 참조하라.
(289p.) "말하는 자세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주의는 나의 주체를 드러내지 않고 나의 말을 하는 급소를 갖고 있다.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말은 나의 이익에 대해 탐욕적이고 타인에 대해 폭력적이기 쉽다."
(290p.) "해설의 전문성으로 경쟁하는 시장 자체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직업적 성취가 보도 시점의 비교 우위를 다투는 속보 경쟁으로 쏠리기 쉽다. 보도 시점의 비교 우위에 상을 주는 '특종상'은 선진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그게 왜곡된 '캐스팅권'을 잊기 위한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도대체 그게 독자들의 이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읽다 >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 연구) [출처]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 연구)|작성자 panicanic (0) | 2015.06.21 |
---|---|
존재는 위협이고 정체성은 방어이다-장정일 (0) | 2013.03.26 |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 연구) (0) | 2013.03.25 |
<사실과 의견>- 김 훈 (0) | 2013.03.25 |
존재는 위협이고 정체성은 방어이다-장정일 (0) | 2012.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