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다/수상2(隨想二)

한글날(작문)

by K기자 2013. 3. 25.

한글날(작문)

오늘 아침 우연히 ‘TV 유치원 하나 둘 셋’ 을 보았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뛰어남을 알리고 우리말을 써야 하는 이유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내고 있어서 역시 공영방송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남다른 데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뿌듯함은 순식간에 배신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미국 사람은 미국말, 일본 사람은 일본말,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말을 써야한다는 한글날에 맞춰 만든듯한 노래가 끝나자마자 대중가요 가수와 어린이가 만드는 어린이영어 꼭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날도 아닌 한글날에, 유일하게 어린이를 위해 만든다는 프로그램에서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잘못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만 들어봐도 한글날의 뜻에 맞게 말글살이를 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코드’ 정치가 난무하고, 대북 정책 ‘로드맵’을 작성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되고,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이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코드는 정서, 로드맵은 이정표, 태스크포스팀은 실무진, 모멘텀은 추세로 바꾸어도 그 뜻이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데 참여정부는 이 같은 외래어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외래어를 쓰면 뭔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정부내 실무진들은 국민들이 모르는 말을 쓰는 것이 국민의 참여를 막아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한다는 사실을 알려나 모르겠다. 


요새 젊은이들이 인터넷 외계어를 쓴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등장해 이대로 가다가는 한글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외계어 만들어 내는 젊은이들을 꾸짖고 영어를 우리말로 하자는 주장을 비판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은 뚜렷하다. 그것은 정부와 방송이 바르고 깨끗한 우리말을 쓰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방송 3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고속도로 요금소로 바꿔 부르기로 한 것은 방송이 먼저 우리말을 쓰는 모범을 보인 좋은 예다. 이제는 누구나 부르고 있는 초등학교라는 이름도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말을 찾아 쓴 멋진 예가 되겠다. 한글날을 국경이로 하느냐 공휴일로 하느냐의 논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을 살리고 한글을 옳게 쓰겠다는 정부와 방송의 의지다. 1152자.


언론사 시험 준비하던 2003년 9월 작성

'쓰다 > 수상2(隨想二)'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5 남북정상회담 3주년에 즈음하여(논술)  (0) 2013.03.25
스와핑(작문)  (0) 2013.03.25
言(작문)  (0) 2013.03.25
비(작문)  (0) 2013.03.25
스승(작문)  (0) 201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