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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방송과 기사

2018.6.16 고문에 꺾지 않은 신념 '옥중 19년' - 리포트 2314

by K기자 2018. 12. 4.




[사회] 고문에 꺾지 않은 신념, '옥중 19년'

(앵커)
1971년 박정희 정권 때 간첩으로 몰려 
19년간 옥살이를 했던 서 승 교수가 
광주를 찾아 북콘서트를 열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상전향서 한 장이면 풀어준다는 
군사정권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그의 신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재일교포 2세인 서 승교수는 서울대 유학생 신분이던 1971년, 방학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들어서다 보안사 요원들에게 잡혀갔습니다.

당시 박정희 후보와 맞서던 김대중 후보에게 북한의 선거자금을 전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보안사는 서 씨에게 말못할 고문을 가했습니다.

허위 사실을 자백하면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볼까봐 고문실 난로 기름을 끼얹어 분신자살을 감행했습니다.

(인터뷰) 서 승/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내가 입을 열지 않기 위해서는 이 길(분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산 세월이 19년, 

군사정권은 사상전향서 한 장만 쓰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서 씨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이유가 뭘까?

(인터뷰)서 승/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일제가 이 제도(사상전향제도)를 만들어가지고 우리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못쓰게 만들었어요."

남북대결이 만들어낸 비극의 사상전향제도, 그리고 그 산물인 보안관찰법은 아직도 양심수들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인터뷰)강용주 전 광주 트라우마센터장
"그게 저는 이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에 있어서는 변화가 됐지만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지점."

고문과 장기간의 옥중생활에도 굽히지 않은 신념의 서 교수는 최근 일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물결이 우리 민족에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며 남다른 기대감을 비쳤습니다.

(인터뷰)서 승
"우리가 주인으로서 주권자로서 전면에 서는 그런 시대가 됐고 그래서 임무가 매우 막중하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