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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이탈리아

2일째 (2003.4.30.수)

by K기자 2013. 3. 25.

2003 Apr. 30th. Wed. 여행 2일째(프랑크푸르트->밀라노)


1. 비행기라는 利器를 알게 된 후 처음으로 창가쪽 자리(window seat)를 얻게 되는 감격을 맛보다. 지금 비행기 아래로 깔린 구름들은 내가 어릴 적 그 위에 떨어져 뛰놀고 싶었던 폭신한 바로 그 구름이다. 비행기가 이 정도 높이까지 이르면(36,000ft) 날씨에 상관없이 작렬하는 태양을 바로 볼 수 있다. 떠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구름없는 새파란 하늘과 환한 태양은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불과 5분 전의 미명이 순식간에 광명으로 바뀌었다. 시간대를 거슬러 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2. 옆에 앉은 캐나다인 부부.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이다. 검은 눈과 머리의 이방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배려에 내 마음은 한결 누그러진다. 

Rosemary & Edward VRSCAY

ervrscay@uwaterloo.ca

3. 이제 Frankfurt 에 도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려서 어떻게 Milan 까지 갈 지가 걱정이 된다. TI(Tourist Information)에 가서 물을 것. How to ride bus or train to get to Milan.

4. 착륙할 때까지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이다. 창문 밖으로 길고 가는 끈이 지나가고 있다. 어떤 강이리라.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는 유럽대륙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5.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밀라노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예약을 했더라면 40유로나 절약할 수 있엇는데 정말 아까울 따름이다. 로즈마리에게 꼭 이메일을 써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기념품으로 고대배지를 줬더니 무척 좋아했다. 그 유명한 독일고속전철 ICE를 타기 직전이다.



6. ICE 안. 11:20분 발 슈투트가르트 행 ICE를 탔다. 만하임에서 BASEL행 기차를 갈아타야 한단다. 역구조나 발권이 무척 개방적이지만 기차의 연착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 무신경에 화가 난다. 오늘은 그냥 밀라노에 도착해서 잠자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고프다. ㅜ.ㅜ

7. 만하임에서 얼마나 기다려서 탄 열차인가. 겨우 바젤행 기차를 잡아 타고 앉으니 눈알이 빠질 듯 졸립다. 날씨도 흐려 기분은 더욱 안 좋다. 과연 오늘 안으로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

8.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진다. 밀란행 직행 열차를 모두 놓쳤다. 스위스 바젤 역에서는 기차 연착은 지네들 책임이 아니라고 잡아뗀다. 설상가상으로 쮜리히로 가는 옵션을 택하면 예약비를 10유로나 더 내야한단다. 20유로 지폐밖에 없다고 보여주니 10유로에 해당하는 스위스 프랑을 거슬러 준다. 기차는 조금 있으면 출발하는데 이 돈을 대체 어디에 쓰란 말인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다.

9. 받은 잔돈을 사용할 생각이 나지 않아서 케밥 하나와 생수 한 통을 사다. 먹은 것이 없어 무척 배고팠는데 이 놈의 케밥은 왜 이리도 맛이 없는가. 그래도 돈이 남아 말보로 담배 한 갑을 사고야 말았다. 밀라노 역에 밤 10시 50분 도착인데 전철이 그 때까지 다닐 것인지 걱정이다. 젠장~ 

10. 여행 첫날부터 일이 왜 이리도 꼬이는 것일까. 좀 전에 산 생수를 먹다가는 죽다가 살아났다. 허겁지겁 물을 먹다가 물이 목에 걸려 숨을 못 쉬고 켁켁댔다.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은 슬금슬금 나를 피한다. 누가 등을 쳐주면 금방 나아질텐데, 나를 사스(Sars) 환자로 생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 다 좋으니 일단 어디로든지 들어가 씻고 쉬고 싶다. 처음부터 너무 힘들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애초에 밀라노까지 가는 과정이 이번 여행의 취약점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짐도 너무 무겁다.

11. 우여곡절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밀라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손에서는 고약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확실한 목적지를 확보했다는 사실에 그나마 적잖이 안심이 된다. 독일이든 스위스든 영어는 편리한 도구다. 비록 변변찮은 영어실력이지만 내가 영어로 말을 할 때마다 어떤 작은 好勝心마저 느낄 수 있었다. 영어는 과연 여기서도 권력도구로 작용하는가. 독일과 스위스에서 잠깐 얘기한 매표소직원. 그들이 빚어낸, 내게 보여준 불협화음에서 유럽연합의 성공적인 통합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독일인, 스위스인들과 함께 기차를 탈 때라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거개인 그들과 달리 이태리인들은 무척이나 시끄럽다.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무척 외향적인 사람들이다. 기차 안내방송도 이들의 국민성을 닮아가는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어디 무슨 역에 도착했다, 지금 출발한다는 식의 내용 정도는 지네들 말로 방송해 줄 법도 한데 그냥 조용하기만 하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고속전철 안에서, 독일 승객들은 객차에서 저렇게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다>


13. 현재 시각 오후 7시 40분. 이탈리아는 적도에 가까워 해가 빨리 질 것 같은데 아직까지 밝은 것을 보면 날이 과연 

길어지기는 한 모양이다. 패션의 나라라 그런지 악세사리 하나, 신발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뵈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로 된 말 몇마디.

그라찌에 -- 감사합니다

씨 -- 예

노 -- 아니오

14. 현재시간 오후 10시 43분. 이제 거의 도착해 간다. 호스텔에 방이 남아 있어야할텐데. Ostello Piero Rotta 02 392 678 095

15. 밀라노에 도착했다. 전철역에서는 정말 절망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고 불량배들은 동양인 여행객을 자꾸 쳐다보는 것 같고 호스텔은 전화를 받지 않고 전철이 끊기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호스텔의 curfew(문잠그는 시간) 시간은 12시라는데 설사 전철을 탄다 해도 그 시간까지 맞출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그럼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가고... 정말이지 준비하지 않은 대가를 여기서 톡톡히 치른다. 다행히 요리사 로베르토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숙을 해야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무사히 이렇게 도착했다. 그라찌에 로베르토~! 이 나라의 첫인상은 그로 인해 좋게 새겨졌다. 밤 12시를 넘긴 시각이었지만 다행히 호스텔은 열려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독일인 매튜와 로라를 만나다. 지적인 매튜와 상냥한 로라는 연인사이다. 충분히 잠을 자고 힘을 내야겠다. 챠오~(Ciao)



<공사중이었던 밀라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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